광화문앞 육조(六曺)거리
우리나라의 상징적 거리는 광화문앞 6조(六曹)거리다
임금이 계시는 정전의 정문인 광화문을 중심으로 하여 동쪽에 의정부(議政府=현재의 국무총리실) 이조(吏曹= 지금의 내부부) 한성부(漢城府 =지금의 서울 시청) 호조(戶曹 =지금의 재정경제원)가 차례로 있었고
서쪽에 예조(禮曹= 지금의 외무부,교육부) 병조(兵曹= 지금의 국방부) 형조(刑曹 =지금의법무부) 공조(工曹= 지금의 건설부)가 차례로 있었다.
그 복판으로 난 길이라 해서 6조(六曹)거리라 했다
조광조가 도학정치를 펴다가 모함을 받고서 옥에 갇히자 성균관을 비릇한 장안의 유생들이 이 六曹(육조 = 여섯개의 관청=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궐문을 밀치고납입 궐병(궁궐수비대 병사)들과 싸우는 바람에 유혈이 낭자했다.
옛 六曹 거리는 민심의 공감이 분출되는 시위의 현장이였으며 정부에 항의하는 4.19와6.3의 학생데모가 이곳에서 벌어졌음도 우연이 아니다.
6조 거리엔 큰 구경꺼리가 있었는데 만인산(萬人傘) 행열이었다.
시골의 현감과 군수들이 자신의 치적들을 六曹의 벼슬아치 들에게 과시 하고자 벌이는 헤프닝인 것으로 커다란 양산에 수령의 치적을 적은 베 나부랭이를 주렁주렁 매어 달고
이를 성장한(화려하게 차려입은) 기생에게 들려 말을 태운 후 <아무개 고을 마무개의 만인산 나들이요!> 하며 삼현육각을 앞세워 이 6조거리를 수십차례 왕복했다.
그 역사깊은 六曹(6개의 관청)거리가 종합청사 거리로 남았다가 지금은 서울 시민의 휴식공간인 지금의 꽃거리로 변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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