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장 점막에는 100조 마리가 넘는 장내세균이 살고 있다. 종류만 400~500가지이며, 세균의 무게를 모두 합하면 1~1.5㎏ 정도 된다고 한다. 종류에 따라 원기둥·공·스프링 모양을 띠고 있고, 크기는 0.5~5㎛(100만분의 1m)다. 머리카락 굵기의 120분의 1~12분의 1밖에 안 된다. 장내세균은 음식물과 장의 분비액·점액 등을 영양소로 활용해 각종 대사물질을 만들어낸다.
이왕림 고대안암병원 통합의학센터 외래교수는 "장내세균은 내재면역 기능을 돕는 존재"라고 말한다. 내재면역이란 몸속에 침입한 물질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선천적인 면역 반응이다. 장내세균이 장 점막으로 들어오는 외부 물질에 대응하기 위해 면역계를 항상 자극하고 있는 덕분에 내재면역력이 길러진다.
'뇌는 바보, 장은 똑똑'이라는 책을 쓴 후지타 코이치로 박사는 "장내세균이 없으면 행복물질인 세로토닌이 제대로 합성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외에도 장내세균이 하는 일은 많다. 장내세균은 장으로 들어온 음식을 분해하고, 영양분이 혈액으로 흡수되도록 돕는다. 그 덕분에 몸속에서 비타민·호르몬·효소 등이 생산되고, 대사가 잘 이뤄지며, 세포들이 활성화된다. 대표적인 장내세균으로 알려진 젖산균은 젖산을 생성해 장의 연동운동을 활발하게 만든다. 장수하는 사람의 장에는 락토바실러스·락토코커스 등의 장내세균이 보통 사람의 2~5배 있다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연구 결과가 있다.
장내세균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몸속에서 병을 일으키는 병원균(이질균·살모넬라균·페스트균 등)이나, 몸속에 살고 있다가 컨디션이 안 좋을 때 문제를 일으키는 기회감염균(포도상구균·바실러스균)과 같은 유해균도 있다.
장내세균은 우리 몸에 좋은 작용을 하는 유익균(비피도박테리움·락토바실러스·락토코커스·엔테로코커스 등), 나쁜 작용을 하는 유해균(베이요넬라·대장균·클로스트리듐 등), 기능이 뚜렷하지 않은 중립균(박테로이즈·유박테리움 등)으로 나뉜다. 사람마다 각 균이 차지하는 비율은 다르지만, 유익균과 중립균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유해균도 일정 비율 존재한다. 인제대 생명과학부 윤현주 교수는 "유해균(병원균 제외)도 내재면역계를 자극하는 순기능을 어느 정도 한다"고 말했다.
유해균이 평상시보다 늘어나면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 장에 암모니아·유화수소·과산화지질 등과 같은 독소와 노폐물을 쌓이게 해, 각종 성인병과 암을 유발하고 노화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특히 면역세포인 림프구(백혈구의 한 종류)는 소장에 많이 모여 있는데, 유해균 때문에 소장에 독소가 가득 쌓이면 림프구의 면역기능이 떨어진다. 대장에 유해균이 많은 사람일수록 독소가 많이 생성돼 간이 부담을 많이 받는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푸소박테리움이라는 유해균이 많으면 대장암에 잘 걸리고, 피르미쿠트·엔테로박터가 많으면 비만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푸소박테리움은 궤양성 대장염을 일으킨 뒤 염증 부위에 있는 세포를 암세포로 변환시키며, 피르미쿠트·엔테로박터는 섭취한 칼로리를 지방으로 전환한다.
/ 한희준 헬스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