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寶物 巡禮

도솔9812 2013. 6. 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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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寶物 巡禮 (4)

 

寶物 915호 法住寺 大雄殿

 

 

 

속리산 기슭에 있는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처음 지었고,

혜공왕 12년(776)에 다시 지었다.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탄 것을

인조 2년(1624)에 벽암이 다시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寶物212호  觀龍寺 大雄殿 (경남 昌寧郡)

 

관룡사는 통일신라시대 8대 사찰 중 하나로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경치가 좋기로도 유명하다.

원효가 제자 송파와 함께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다

갑자기 연못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절 이름을 ‘관룡사’라 하고

산 이름을 구룡산이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寶物 299호   華嚴寺 大雄殿 (전남九禮郡)

 

 

화엄사는 지리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통일신라시대에 지었다고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선종대본산(禪宗大本山)으로 큰 절이었고,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탄 것을 인조 때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중 절의 중심 법당인 대웅전은 화엄사의 건물 중

각황전(국보 제67호) 다음으로 큰 건물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조선 인조 8년(1630)에 벽암대사가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寶物 55호  봉정사 대웅전 (경북 安東)

 

 

 

봉정사는 신라 신문왕 2년(682)에 의상대사가

세운 절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도력으로 만들어

부석사에서 날린 종이 봉황이 이곳에 내려 앉아

봉정사라 불렀다고 한다.

 

寶物 835호  雲門寺 大雄寶殿

 

신라시대에 세운 운문사는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는데

지금의 절은 조선 숙종 44년(1718)에 있었던

네 번째 보수 때의 것이다.

대웅보전도 이때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寶物 801호  麻谷寺 大雄寶殿

 

 

 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9년(640) 자장율사가 세웠다는 설과

신라의 승려 무선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세웠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신라말부터 고려 전기까지 폐사되었던 절로

고려 명종 2년(1172) 보조국사가 절을 다시 세웠으나

임진왜란 뒤 60년 동안 다시 폐사되었다. 훗날 조선 효종 2년(1651)에

각순대사가 대웅전·영산전·대적광전 등을 고쳐 지었다고 한다.

 

 寶物 1243호   完州  松廣寺大雄殿

 

 

 

송광사는 통일신라 경문왕 7년(867)에

도의가 처음으로 세운 절이다.

그 뒤 폐허가 되어가던 것을 고려 중기의 고승 보조국사가 제자를 시켜서

그 자리에 절을 지으려고 했지만,

오랫동안 짓지 못하다가 광해군 14년(1622) 응호·승명·

운정·덕림·득순·홍신 등이 지었다고 한다.

이후로도 인조 14년(1636)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절의 확장공사가 있었고 큰 절로 번창하였다.

 

寶物 1300호  해인사홍제암

 

 

해인사에 속해 있는 암자로

임진왜란(1592)과 정유재란 때 승병장으로 큰 공을 세운

사명대사가 수도하다 세상을 떠난 곳이다.

‘홍제암’이라는 이름은 사명대사 입적 후 광해군이 내린

‘자통홍제존자’라는 시호에서 따왔다.

광해군 6년(1614)에 혜구대사가 사명대사의 초상을 모시기 위해

건립하였으며, 1979년 10월에 해체·보수공사를 실시하였다

 

  寶物 37호  實相寺三層石塔  (전북 南原)

 

 

 실상사는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洪陟)이 창건하였으며 풍수지리설에 의거하여,

이 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 하여 지은 것이라 한다.

이 곳에는 3층 석탑 이외에도

석등, 묘탑, 탑비, 부도, 철조여래좌상 등이 있어 유명하다.

 

 

寶物 25호  金山寺 五層石塔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기본 양식을 따르면서도

기단이나 지붕돌의 모습 등에서 색다른 면을 보이고 있어

고려시대 작품으로서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寶物 1372호  咸平   古幕川石橋

이 석교는 함평군과 나주시 경계 사이를 흐르는

고막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이다.

고려 원종 14년(1273) 무안 법천사의 도승 고막대사가

도술로 이 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이 있다.

총 길이 20m, 폭 3.5m, 높이 2.5m로서 5개의 교각 위에

우물마루 형식의 상판을 결구한 널다리로서

동쪽으로는 돌로 쌓은 석축도로가 7∼8m 연결되고

최근의 콘크리트 다리가 이어지고 있다.

 

 寶物 66호  慶州 石氷庫

 

석비와 입구 이맛돌에 의하면,

조선 영조 14년(1738) 당시 조명겸이 나무로 된 빙고를

돌로 축조하였다는 것과, 4년 뒤에 서쪽에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는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이 때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규모나 기법면에서 뛰어난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寶物 673호   玄風石氷庫 (대구 達城)

 조선 영조 6년(1730)에 만들어진 얼음청고

 

 寶物 1403호  紹修書院  講學堂

강학당은 서원의 양대기능중 하나인 학문을 강론하던 장소로

규모는 정면4칸, 측면3칸의 팔작지붕 겹처마로서 웅장하면서도

내부 대청의 북면에는 명종의 친필인

소수서원(紹修書院) 이란 편액이 높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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