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레종의 전설◈
어느 날, 신라의 제35대 경덕왕은 봉덕사에다 큰 종을 만들라고 명령했습니다. 용이 구름을 타고 나는 무늬도 그려 넣었습니다. 일인지 종에서 소리가 나질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정성이 부족하여 부처님께서 노하신 것 같소. 그러니 경들은 다시 시주를 거두어서 더욱 정성을 들여 만들도록 하시오." 계속되었습니다. 하루는 봉덕사 주지 스님이 꿈 속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잠에서 깬 주지 스님은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 아이라면...... 시주할 게 아무것도 없다던 그 집 아이를 말하는 것이구나. 부처님의 뜻이니 서둘러야겠다.'
아기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넋두리를 했습니다. 만들어졌습니다.
에밀레종의 원래 이름은 성덕대왕 신종이야. 봉덕사 종이라고도 하지. 이 종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종이면서 세계적인 예술품이기도 하다. 둘레 709㎝이다. 이 영묘사가 또 폐사되자 경주 남문 밖에 두고서 조석으로 치다가 경주박물관이 건립되자 이곳으로 옮겨져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이 전설의 사실 여부는 세인의 오랜 관심이었는데 아래 기사는 이 문제와 관련해 참고가 된다. 걸작이다.
에밀레종의 조성 동기와 주종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을 새긴 종명에는 성덕대왕, 경덕왕, 혜공왕에 대한 찬사와 특이하게 혜공왕의 어머니인 만월부인에 대한 찬사가 두드러진다. 또 ‘원구’라는 인물의 권력이 강력했음을 나타내는 기록이 있다. 친정오빠인 김옹과 함께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종명에 나오는 원구는 혜공왕의 외삼촌인 김옹이다. 죽음을 맞는다. 종 만들기의 거듭되는 실패와 어린아이의 희생이라는 에밀레종 설화에 혜공왕, 만월부인, 김옹 세 사람을 대입하면 혜공왕대의 정치사와 유사함을 확인할 수 있다.
어머니를 부르는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종소리에서 아련히 들려 일명 '에밀레종'으로도 불리는 이 종에 정말 아이를 넣었을까?. 물건을 내놓아야 했으며 이야기에서 처럼 내놓을 것이 없을 땐 아기라도 내놓아야 할 정도였던 것이다.
무게가 49만 근에 달했다는 황룡사 종이며, 당나라 황제가 감탄했다는 1만 개의 불상을 모신 만불상도 모두 경덕왕 때에 만들어졌다. 덮을 정도로 생활이 풍족했지만 이러한 부귀영화는 어디까지나 귀족들에게 해당하는 것이었기에 일반 백성들의 삶은 오히려 너무나 비참했다.
그렇다면 에밀레종의 전설은 진실일까? 거짓일까? 것이라는 설과 다른 편에서는 실제로 아기를 넣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루는 인이 검출되지 않았다.
포항산업과학연구원 신형기 박사는 13 일 "종 12군데에서 샘플을 채취, 분석시료 안에 1천만분의 1% 이상 들어있는 성분도 조사 가능한 '극미량원소분석기'로 분석 한 결과 인은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성덕대왕신종은 남문인 징례문에 걸려있어 매일 시각을 알려주었다) 어린 아기 하나에 들어 있는 인의 성분이 12만 근이나 되는 큰 종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사람의 비중이 구리보다 가벼워서, 사람을 넣었다면 위로 떠서 타기 때문에 '쇠찌꺼기'처럼 남는다. 만약 제작 당시 이것을 '불순물'로 봐 제거했다면, 인이 검출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학계는 어린아이를 집어넣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데 대체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학자들은 그러나 "종을 만들기 위해 사람 을 집어 넣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당시 신라인들이 '피나는' 노력을 들였다는 점, 그만큼 불심이 깊었다는 것을 반영한 것 아니겠느냐"는 반응이다. 아이를 집어 넣었든지 넣지안았든 하여간 신라인들의 대단한 집념과 의지의 산물이라고 볼수 있을것이다. 오히려 에밀레종 전설의 핵심은 종 자체의 소리와 제조 기법의 신비가 아닐까 한다. 은은한 여운을 재현하는 데에는 완전히 실패했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 로스앤젤레스 산 페드로에는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 하기위해 우리나라가 1976년에 기증한 ‘우정의 종’이 한국식 보신각 건물과 함께 자리 잡고 있는데(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에 배경으로 잠시 등장하기도 한다, 못하고 있다. 종소리가 갖는 주파수와 화음 등등 여러 가지 항목을 수치화하여 100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겨 보면 현재의 보신각종은 채 60점이 안 된다.
(에밀레종의 문양의 탁본 위에 심응섭선생의 글 ) 흥미로운 것은 46톤이라는 어마어마한 크기로 유명한 중국의 영락대종은 40점 대에 머무를 뿐이라는 것이다. 왜 에밀레종의 소리를 재현하는 일은 어려운가? 결국 그것을 그대로 복제해 내는 기술을 밝히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이름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그대 들리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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