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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光海君의 여인을 취한 아버지 宣祖

도솔9812 2014. 2. 20.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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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光海君의 여인을 취한 아버지 宣祖
  
선조는, 13대 명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전혀 왕위 승계 대상이 아니었으나 16세의 나이로 
갑자기 임금에 오른 인물이다.
선조는 왕위에 오른 다음 해에 
14세인 의인왕후와 결혼을 하였으나 
몸이 허약한 의인왕후는 자식이 없이 
허울뿐인 왕비 자리를 30여 년간 지키게 되고, 
후궁인 공빈 김씨와의 사이에서 
임해군과 광해군이 태어난다.
임해군이 5세이고, 광해군이 3세 무렵에 
생모인 공빈은 세상을 떠나고, 
다른 후궁인 인빈 김씨가 선조의 총애를 받는다. 
임해군이 장자이기는 하나 그리 똑똑하지 않다고 판단되었고 
공빈도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선조의 마음은 인빈의 아들 신성군에게 기울어진다.
이때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난리 통에 신성군이 세자가 되면 위험할 것을 예상한 
인빈은 아들 신성군을 사지(死地)에서 구하기 위해 
왕세자 책봉을 여러 핑계를 들어 사양하며 
광해군에게 양보하였고, 
선조는 선뜻 광해군을 왕세자로 책봉하지 못하고 
망설이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김개시는 14세 때 입궐하여 왕자인 광해군의 숙소에서 
그를 수발하는 나인이 되었고, 
이때부터 총각 광해군과 처녀 김개시는 
자연스레 깊은 관계에 빠져들었으며 
이런 관계는 광해군이 세자가 된 피난길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미인은 아니나 빠른 판단력과 명석한 두뇌를 지닌 
김개시는 광해군의 정치적 진로에 깊은 조력자가 된다.
임진왜란 발발 직후 왜적이 파죽지세로 
서울로 향하자 선조는 광해군과 함께 피난길에 오른다. 
임진왜란에서 나라가 소생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선조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중국 명나라로 망명할 것을 결심하고, 
피난 길인 평양성에서 급하게 광해군을 왕세자로 책봉한다. 
광해군이 18세 되던 해이다.
압록강 변 의주에 당도한 선조는 깊은 고심 끝에 
세자 광해군에게 섭정을 맡기고 
자신은 명나라로 망명할 뜻을 밝힌다. 
그러나 결사 항쟁을 외치는 광해군과 유성룡 등 
대소신료의 완강한 만류에 부딪친 선조는 
망명의사를 보류하고 이덕형을 명나라에 보내 
구원병을 요청하게 된다.
김개시는 피난지 의주에서 낙담의 세월을 보내던 
선조의 눈에 띄어 성은(聖恩)을 입게 되고, 
선조의 총애를 받는 특별상궁(特別尙宮)이 된다. 
광해군의 동궁 나인 출신임을 의식하여 
후궁의 첩지는 내리지 않는다. 
아들 광해군의 여인이 아버지 선조의 여인으로 
둔갑하는 상황이 적군을 앞에 둔 피난처에서 
발생한 것이다.

<광해군과 김개시의 사랑>
선조의 총애를 받던 인빈은 
모든 것을 김개시에게 빼앗기고, 
아들인 신성군 조차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나자 풀이 죽는다. 
평양성 탈환으로 전세(戰勢)는 반전되고 
선조는 서울로 돌아온다. 
그리고 인빈의 방해를 받은 김개시는 
선조 곁을 떠나게 된다.
의인왕후가 세상을 떠나고 
선조는 새 중전을 간택하기로 하여 
19세 된 인목왕후와 51세의 선조가 혼례식을 치른다.
김개시는 선조의 성은을 입은 몸으로 
그의 아들 광해군을 사랑한다는 것이 
부질없고 이룰 수 없는 꿈이라 생각하고 
여승이 되기 위해 머리를 깎으려 하였으나 
광해군의 만류로 뜻을 접은 대신, 
광해군의 세자 자리를 지켜주기 위해 
선조에게 몸으로 접근하여 
인목대비와의 합방을 막는 등 
인목대비가 임신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인목왕후는 선조의 유일한 적자인 
영창대군을 출산한다. 
인목왕후가 24세 되던 해, 
중풍을 맞은 선조는 34세 된 광해군을 폐하고 
3세 된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위기를 느낀 김개시는 무언가 결단을 내릴 
시기가 왔다고 판단하여 선조에게 약밥을 올렸고, 
이를 맛있게 먹은 선조는 급채로 사망한다. 
광해군은 나이 34세, 
세자책봉 16년 만에 15대 임금이 된다.
김개시는 선조가 세상을 떠나고 광해군이 즉위한 후에 
다시 광해군의 제조상궁으로 자리를 옮긴다. 
아버지 선조에게 빼앗겼던 자신의 여인을 다시 찾아온 것이다. 
광해군은 단지 자신의 여인인 궁녀를 데려온 것이지만 
김개시가 아버지 선조를 모셨던 궁녀인 만큼 
비난의 소지가 적지 않았고, 
그래서 김개시는 후궁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광해군은 김개시에게 절대적인 신임과 사랑을 보냄으로써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게 만들었고, 
광해군의 제조상궁으로서 당대의 실력자 이이첨과 함께 
당시의 정치판을 좌지우지한 실세였다. 
왕의 신임을 배경으로 권력을 틀어쥔 김개시는 
오직 광해군만을 위해 충성했다. 
광해군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궁중에서 온갖 악역을 떠맡은 궁녀가 바로 김개시였다.
인조반정(仁祖反正)의 발발로 광해군은 왕위에서 폐위되고, 
김개시는 처형된다.

인생은 한바탕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