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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시 모음

도솔9812 2010. 5. 15. 08:18

김소월 시 모음 

산유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이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봄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밟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진달래 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 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이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가는 길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한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요.

 


 

개여울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 이 개 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 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 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 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 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금잔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深深) 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 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 산천에도 금잔디에

 

 

어제도 하루 밤 나그네 집에
가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었소.

오늘은 또 몇 십 리 어디로 갈까.
산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 곽산
차 가고 배가는 곳이라오.


여 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 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 십자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 이 갈 길은 하나 없소.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가고 오지 못한다'하는 말을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만수산(萬壽山)을 올라서서
옛날에 갈라선 그 내님도

오늘날 뵈올 수 있었으면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고락에 겨운 입술로는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하게


말하게도 지금은 되었건만.
오히려 세상 모르고 살았으면!

'돌아서면 무심타'고 하는 말이
그 무슨 뜻인 줄을 알았으랴.


제석 산 붙는 불은 옛날에 갈라선 그 내님의
무덤엣 풀이라도 태웠으면!

 

먼 후일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 때의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못잊어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오.
그런 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료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오
그런 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껏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시메 산골
영 넘어 갈려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길은 칠팔십 리
돌아서서 육십 리는 가기도 했소

불귀(不歸) 불귀 다시 불귀
삼수갑산에 다시 불귀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십 오 년 정분을 못잊겠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삼수 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초혼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는 그 사람이여!
사랑하는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음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음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