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의 조건
명정승으로 손꼽이는 이준경이 여섯살때 갑사사와에 연류되어 형인 이윤경과 함께 유배살이를 하고 있을 때다.
어느 겨울날 이 형제가 알몸이 되어 부들 부들 떨고 있을때 순찰 점고 중이던 원님이 보고 새 무명옷을 지어 입혔다.
꾀가 많은 준경이 순찰점고 날인줄 알고 새옷을 얻어 입고자 헌 누더기를 벗어 버리고 알몸으로 있었던 것이다.
이준경은 평생을 통해 실리주의를 택했고 이윤경은 실리가 있더라도 도리에 어긋나면 안된다는 정치철학가 였다.
이윤경의 아들 이중설이 을사 사와에 연루되어 친구를 고발하면 구명이 되고 아니면 처형받게 되었을 때 아버지 이윤경은 구차하게 제목숨 살리고자 친구를 배단할 수 없다 하고 숙부 이준경은 친구를 위하여 자신이 죽기까지 할 필요가 없다 했다.
후에 이이는 이준경보다 형 이윤경이 났다고 평가했다. 실리냐 도리주의냐, 이준경파냐, 이윤경파냐해서 나누어 졌는데 이준경파의 정치철학을 발휘했던 재상은 병자호란때 국란에서 사직을 보전한 최명길이다.
농성중이던 남한산성에서 오랑캐한테 항복하는 문서를 갈기갈기 찢으며 통곡한 사람은 김상헌 이었고 최명길은 이 찢어진 문서를 주어모으며 찢어버리는 사람이 없어선 안되고 또 이를 주워 붙이는 사람이 없어서도 안된다고 했다.
이후 청나라가 명나라 침공을 위해 우리나라에 원병을 청했을때 나라의 재정이 파탄하여 응할 수 없다하며 반대하여 기한을 넘긴것이 최명길이요 살기가 등등해진 청나라가 문책인사를 들여보내라 했을때 자원해서 사지에 들어간 것도 최명길 이였다. 우리역사의 교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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