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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가야 / 신라/사료와유물★

도솔9812 2013. 4. 6. 19:59
 
★중앙박물관/가야 / 신라/사료와유물★

 

 
 

 

★중앙박물관/가야 / 신라/사료와유물★

 가야는 변한(弁韓)의 옛 땅인 낙동강 중하류에서 풍부한 철 자원을 기반으로 성장하였다. 전기의 가야는 경남 김해 지역의 금관가야[駕洛國]를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바닷길로 낙랑과 왜에 철을 공급하면서 국제 교역의 중심이 되었다. 3세기 후반에는 새로이 북방계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세력이 더욱 강해졌다. 후기에는 경북 고령 지역의 대가야(加羅國)가 중심국으로 성장하였는데, ‘대왕(大王)’이란 글자가 새겨진 토기와 화려한 금관이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 신라, 백제와 힘을 겨룰 만큼 강한 세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가야 문화의 특징은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 부드러운 곡선미의 다양한 토기, 많은 양의 철제 무기류와 금ㆍ은 상감 기법 등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경남 김해 대성동·함안 도항리ㆍ합천 옥전, 경북 고령 지산리 등지의 가야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수준 높은 가야 문화를 보여 준다.

 

 갑옷과 투구 - 전투를 할 때 머리와 몸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투구[?], 어깨가리개[肩胛], 그리고 판갑옷[板甲]으로 구성되어 있다. 투구는 사각형과 삼각형의 철판을 못으로 연결한 것이다. 어깨가리개는 좌우 2매로 되어 있으며 가장자리에는 가죽 끈을 연결하기 위한 구멍이 뚫려 있다. 갑옷은 네모모양의 긴 철판을 인체의 곡선에 맞게 세로로 구부려 연결하였다. 경상북도 고령 지산리 32호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짐승의 뿔에 술과 같은 음료를 따라 마시던 것에서 유래된 잔이다. 뿔모양 잔은 서역(西域)에서 처음 만들어졌으며 신라와 가야지역에서 주로 출토된다. 삼국시대 뿔모양 잔은 대부분 토기로 만들었으나 청동, 금동, 칠기로 제작된 것도 있다. 이 뿔모양 잔은 잔의 끝부분에 말머리가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사산조 페르시아나 중국 등지에서 이와 비슷한 형태가 확인되고 있다. 

 

 굽다리위에 짚신을 만들어 올리고 그 짚신 안에 굽이 달린 잔을 붙인 한 쌍의 토기이다. 짚신을 본떠 만든 상형토기(像形土器)로, 죽은 이의 영혼을 이승으로부터 저승으로 옮겨가는 의미로 제작된 것이다. 부산 복천동 53호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곡식을 담는 창고로서, 풍요를 기원하는 농경사회의 전통적인 신앙과 저승에서도 풍요로운 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바라는 염원에서 만든 것이다. 집모양토기는 기둥으로 받쳐 올린 고상가옥(高床家屋) 형식과 일반적인 지상(地床)식의 두 가지 형식이 있으며 지붕에 올린 재료에 따라 초가지붕과 기와지붕 형태가 있다. 이 집모양토기는 8개의 다리가 달린 고상가옥이며 맞배지붕형식이다. 경상남도 창원 다호리 돌방무덤에서 파편으로 출토된 것을 복원하였다.

 

 

 

 금동관 - 가야왕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관으로, 세움장식의 좌우에 나뭇가지 모양의 세움장식을 덧붙인 형태의 금동관이다. 매우 간략화 된 형식으로 고령 지산리 32호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유리잔 - 중앙아시아의 비단길[Silk road]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진 유리그릇이다. 연한 초록색의 투명 유리에 코발트빛 반점무늬가 있는데 경주 금령총(金鈴塚)에서 출토된 유리그릇과 매우 비슷하다. 이러한 반점무늬 유리그릇은 남러시아·지중해 주변지방에서 출토되는 로마유리[Roman Glass]계통이다. 경상남도 합천 옥전 1호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신라의 경주 이외의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출토된 것이다. 

 

 신라는 한반도 남동쪽에 있던 진한(辰韓) 12국 가운데 경주 지역의 사로국(斯盧國)이 성장ㆍ발전한 나라이다. 주변의 소국을 병합하여 영토를 확장한 신라는 6세기에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받아들여 정치와 사상의 기반을 마련하고 고대국가 체제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대가야(大加耶)를 병합(562년)하는 등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신라 문화는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과 불교로 대표된다. 돌무지덧널무덤에서 출토된 금관, 귀걸이 등은 신라를 ‘황금의 나라’로 부를 만큼 화려하고 뛰어난 세계적 금공예품이다. 불교는 골품제(骨品制)와 함께 신라 사회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신라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였다.
한편 경주 지역에서 출토되는 외래外來의 유물과 토용에서 보이는 서역(西域) 문화의 흔적은 신라의 대외 교류와 국제적인 면모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둥근 고리 여러 개를 접합하여 만든 금구슬 70여 개와 옥을 꿰어서 만든 목걸이다. 금구슬에는 여러 개의 하트모양 달개[瓔珞]가 매달려 있다. 맨 아랫쪽에는 녹색의 옥 1점이 매달려 있어 황금빛 금과 잘 어울린다. 보물 제456호로, 경상북도 경주 노서동 215번지의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금관은 순금으로 만든 것으로 나뭇가지와 사슴뿔모양으로 된 세계적 걸작품이다. 허리띠에는 곱은옥?물고기모양판?손칼모양장식 등 다양한 물건을 본떠 만든 장식이 달려 있다. 금관과 허리띠, 관 꾸미개 등은 왕족의 위세품이자 장송의례용으로 보인다.

 연록색의 유리병으로, 봉황(鳳凰)의 머리를 닮았다하여 ‘봉수형(鳳首形) 유리병’으로도 부른다. 손잡이에는 금실로 감아 수리한 흔적이 있어 당시 왕실에서도 유리는 매우 귀중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유리병은 대롱불기법으로 만들어진 이른바 ‘로만글라스’로, 비단길 혹은 바닷길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보 제193호로, 황남대총 남쪽무덤에서 출토되었다.

 

 말을 타고 있는 주인과 하인 모습의 토기이다. 말의 앞가슴에 액체를 따를 수 있는 긴 대롱이 달려 있어 주전자[注子]와 같은 기능의 토기로 생각된다. 주인은 장식이 화려한 말을 타고 고깔모양의 모자에 갑옷을 입고 있다. 하인은 수건을 동여맨 상투머리에 웃옷을 벗은 채 등에 짐을 메고 있다. 하인의 손에 방울을 들고 있어 길 안내를 하고 있는 듯 하다. 국보 제91호로, 경상북도 경주 금령총(金鈴塚)에서 출토되었다.

 

 뱀, 개구리, 사람 등의 토우가 어우러져 항아리에 붙어 있다. 개구리의 왼쪽 뒷다리를 물고 있는 뱀이 대칭으로 배치되고 뱀 사이에는 오른손으로 성기를 잡고 왼손에 뭉둥이를 들고 있는 남자가 표현되었다. 뱀, 개구리, 사람 등이 비교적 단조롭게 표현되었으나 신라인의 예술성과 사상을 엿 볼 수 있다. 국보 제195호로, 경주 노동동 11호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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