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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고백 “나라면 이런 암치료 안받겠다”

도솔9812 2013. 4. 8. 08:28

의사의 고백 “나라면 이런 암치료 안받겠다”

입력 F 2012.02.18 09:56 수정 2012.02.19 11:03

 

 

“몇 달 더 살자고 그런 고통 받아야 하나”

많은 의사들이 가망 없는 환자에게 고통스러운 치료를 권유한다. 하지만 자신들은 결코 그런 치료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는 증언이 나왔다.  “의사의 고백 ‘나 같은 의사들이 진행암 치료의 고통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려 하는 이유.’” 최근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에 자문의사인 마틴 스커가 기고한  칼럼의 제목이다. 진행암이란 원래 발생한 곳에서 암 덩어리가 커지고 신체 다른 부위로 전이를 일으켜 장기 치료를 기대할 수 없는 암을 말한다. 아래는 칼럼 요약.

 생명을 위협하는 중병에 걸린 환자들이 있다. 이들을 살리려는 우리 의사들이 노력은 허사로 끝나는 일이 많다. 더욱 나쁜 것은 여러 달에 걸쳐 가혹한 치료를 해야 하는 경우다. 이런 치료는 환자의 생명을 연장해줄 가능성이 있을지는 몰라도 삶의 질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내가 아는 절대 다수의 의사는 자신이 이런 치료를 받을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의료계의 비밀로 감춰져 왔다. 이 같은 침묵은 미국 남가주대 가정의학과의 켄 머레이 교수에 의해 깨졌다. 지난 달 온라인 잡지에 에세이를 발표해 실상을 폭로한 것이다.

의사들은 왜 그럴까. 오랜 동안 진료를 하다 보니 현실주의자가 된 것이다. 예컨대 진행된 췌장암 같은 병은 생존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는 사실을 이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와 그 친척들은 현대의학이 해줄 수 있는 일에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고 있다.

예컨대 췌장암은 너무 늦게 진단되는 일이 흔하고, 진단 후 6개월 이내에 사망하는 것이 보통이다. 내가 만일 이런 병에 걸린다면 화학요법을 포함해 아무런 치료도 받지 않겠다. 이런 요법은 끔찍하게 고통스럽고 환자를 비참한 상태를 만들지만 성공률은 극단적으로 낮다. 나라면 통증을 없애는 완화치료만을 받을 것이다. 하루 하루 죽음을 향해 가는 동안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도와주는 치료 말이다.

자신이 공격적인 진행암을 지니고 있으며 치료를 받는 경우에도 5년 생존율이 최대 5%밖에 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문가에게서 들었을 경우 의사들은 어떻게 할까. 절대 다수가 그런 치료를 거부할 것이다.

그 뿐 아니다. 예컨대 완전한 심장마비가 일어난 사람들이 소생하는 비율은 2%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심폐소생술의 과정 자체가 야만적이고 고통을 준다(갈비뼈가 부러져야 제대로 된 심폐소생술을 시행한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병원 드라마를 많이 본 탓에 엉뚱한 기대를 품는다. 몇 분후에 완전 회복돼서 걸어나갈 수 있다고 말이다. 의료 관계자 중에는 심폐소생술을 거부한다는 뜻의 ‘NO CODE’를 새긴 메달을 목에 걸고 다니는 사람들이 일부 있다. 아예 문신으로 새겨놓고 있는 사람도 나는 본 적이 있다.

환자가 중증이거나 나이가 많거나 치명적 병에 걸려있을 경우 심폐소생술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하지만 이로 인해 고통을 받을 가능성은 압도적으로 크다. 머레이 교수는 에세이에서 쓴 바 있다.  “무의미한 치료”가 이뤄지는 것은 거의 모든 의료 전문가들이 목격한 바다. 몸을 절개하고 구멍을 뚫고 튜브를 넣고 기계와 연결하고 약물로 공격한다. 나는 동료 의사들로부터 이런 말을 셀 수 없이 들었다. “약속해주게, 만일 내가 저런 상태에 있는 것을 발견하면 죽여주겠다고”.

과잉 치료 문제는 젊은 사람이 중병을 앓고 있을 때 가장 심각하다. 그들의 아내, 엄마, 기타 친척들이 온 힘을 다해 싸우면서 의사들에게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환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싸우는 것인 경우가 많다. 사랑하는 이를 잃는다는 생각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환자에게 가하는 상처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으려고 한다.

환자 자신이 치료를 중단하고 싶어하는 경우도 흔히 있다. 하지만 도저히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느낌을 가진다. 가까운 이들이 계속 병과 싸우라는 압력을 넣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신이 살아 있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모든 조치를 취하도록 내버려두고 만다.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말이다.  

의사들은 지금이 수건을 던져야 할 때라고 사람들에게 말하는 데 능하지 못하다.  이는 패배를 인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받은 모든 교육과 우리의 본능은 말한다. 뭔가 해줄 수 있다고 사람들에게 계속 약속하라고.

지난 여름 나는 면역계 질병인 루푸스를 앓는 환자를 보았다. 그는 48세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전부터 심장에 문제가 있었고 모습이 매우 초췌했다. 그의 38세된 아내를 앉혀놓고 나는 말했다. “남편이 앞으로 일년도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극히 높다는  사실을 아세요?” 아무도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고 그녀는 대답했다.

 환자는 11월에 사망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제때 진실을 말해줬다며 내게 감사의 마음을 표시했다. 이 말은 그들이 가망 없는 일에 희망을 가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대신 그들은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 남아있는 시간에 최선을 다했다. 고급 벤틀리 자동차를 몰고 로마로 함께 여행하기까지 했다. 그의 꿈 중의 하나를 실현해주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