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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모자람이 낳다

도솔9812 2013. 9. 11. 10:27

 

                                                                             계영배

 

 

 

 

                         약간 모자람이 낳다

 

 

 

최인호의 소설 '상도'에 계영배 이야기가 나온다. 의주의 만상 임상옥이 석숭 큰스님으로 부터 계영배를 선물 받고 이의 교훈을 거울 삼아 송상을 누르고 조선의 최고 상인이 된다는 줄거리다. 나는 계영배가 소설로 설정된 가상의 술잔으로 생각했다. 그러던 중 30여년이 지나 계영배가 실제로 있었던 술잔인 것을 알았다.

 

계영배(戒盈杯)는 넘침을 경계하는 잔으로, 잔에 70%이상 차면 술이 흘러 버리는 신비의 잔이다. 계영배는 고대 중국에서 제천 의식 때 사용했던 '의기(儀器)'에서 유래되었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공자가 제나라 환공의 사당을 찾았을 때 생전의 환공이 늘 곁에 두고 보면서 스스로의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사용했던 '의기'를 보았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정치를 하면서부터 지인들이나 외국 손님들에게 계영배(戒盈杯)를 선물했는데, 국회의원 시절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에게 계영배를 선물했고 외교계에서는 우리나라 자기 중 외국인선물용으로 선호도 1등 제품이라 한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가 해체되면서 박근혜위원장이 젊은 이준석위원(28세)에게 준 선물이기도 하다. 이는 뜻이 있을 것이다. 가격은 50만원 정도라 한다.

 

계영배는 술을 70% 이상 따르면 술이 전부 빠져 나가니, 말하고 싶은 것도 70%만 말하고, 행동하고 싶은 것도 70%만 하고, 갖고 싶은 것도 70% 정도만 갖는 것에 만족하고 과욕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는 술잔이다.

 

퇴계선생의 활인심방 (李退溪活人心方)에서 경계한 말들과도 맥을 같이 한다. 먼저 수본분(守本分) 으로 자기 분수를 지키고, 두째 지족(知足)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할 것이며 셋째 과욕(寡慾) 으로 욕심을 줄이고 네째 처중(處中)으로 지나치거나 부족하지 않게 처신을 신중히 할 것이며 다섯째 계탐(戒貪)으로 천박한 탐욕을 내지 말라고 하였다.


과유불급(過猶不及)도 같은 뜻이다. 즉,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기 때문이다. 겸손한 자세로, 욕심과 자만심을 누르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항상 남의 말에 귀 기울이고, 나를 늘 뒤돌아보는 마음의 미학이 계영배의 가르침이다.

 

 

 

계영배는 헤론의 분수와 같이 사이펀의 원리르 이용한 것이다. 사이펀은 U자 모양으로 굽은 관으로, 한쪽은 길고 다른 한쪽은 짧은 모양이다. 이 관을 이용하면 액체가 든 병이나 통을 깅울이거나 움직이지 않고도 높은 곳의 액체를 낮은 곳으로 옮길 수 있다. 대기압을 이용해 높은 곳의 액체를 낮은 곳으로 이동시키는 원리다.

 

계영배는 조선 후기 실학자였던 하백원과 우명옥이라는 도공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원도 홍천에는 계영배를 만든 우명옥에 관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우명옥은 강원도 산골에서 질그릇을 구워 파는 사람이었는데, 사기그릇을 만드는 유명한 광주분원에서 스승을 만나 실력을 쌓은 후 '설백자기(雪白磁器)라는 훌륭한 도자기를 만들어 왕실에 진상했다 한다. 임금은 설백자기의 아름다움에 감탄해 상을 내리며 크게 칭찬했고, 이름난 도공이 된 우명옥은 명성과 재물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동료의 꾀임에 넘어가 술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명예와 재산을 모두 잃고 말았다. 그의 스승은 다시 훌륭한 그릇을 만들라며 간곡하게 당부했고, 그제야 우명옥은 잘못을 뉘우치고 술을 끊었다.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밤낮없이 열심히 만든 것이 바로 게영배였다. 우명옥은 이 술잔을 스승께 드리고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그 후 이 잔은 의주 상인 임상옥의 손으로 넘어가 임상옥은 계영배를 늘 옆에 두고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며 살면서 더 큰 재물을 모았다. 그리고 자신이 모은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존경받는 부자가 되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너무 똑똑하면 상대방이 경계를 하고 주위에 사람이 모여들지 않는다. 약간 여백이 있어야 한다. 속담에 '달도 차면 기우나니'란 말이 있다.

 

돈도 너무 많이 벌려고 애쓰지 말고 출세도 너무 욕심내면 앟된다. 큰 돈을 모았다가 감옥소에 가는 기업인들을 수없이 보았고 높이 올라갔다가 명예를 완전히 잃고 인격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사람을 오늘도 볼 수 있다. 약간 어수룩하고 어벙벙하게 사는 것이 노후를 잘 보내는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