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자료/전설과 설화

견훤과 왕건의 이야기

도솔9812 2014. 1. 9. 21:21

 

 

 

◈견훤과 왕건의 이야기◈

팔공산맥(八公山脈) '자비사'

 


팔공산 전쟁에서 견훤에게 크게 졌던 왕건이 그로부터 냉산에 ‘숭신산성’을 쌓고, 그 아래에 軍倉(군창)을 일곱 개 지어 군량을 준비한 곳 중의 하나가 도개들이고 이것을 품고 있는 곳이 '자비사'이다.

 

 

 

 


그 후 왕건은 ‘태조방천’으로 불리는 낙동강 연안에서 견훤과 후삼국 통일을 위한 일전을 벌려 크게 이겼고 그 이후로 ‘냉산’을 ‘태조산’으로 이곳 주민들은 현재 부르고 있다.

 


태조산은 낙동강 동쪽에 위치하고 팔공산맥(八公山脈)에 속한다. 그 태조산 상주 쪽에 도개들을 품고 있는 도개면 신림리에 ‘자비사’와 ‘자비원’이 우뚝 자리 잡고 있다.

 


자비사는 2004년 8월 25일 대웅전낙성식 및 삼존볼 점안식을 한 사찰로 아주 단아하고 깨끗한 사찰로 당시에는 어려운 무의탁 노인들을 부양하는 곳 이였다.

 

 

당시 건물일부에 부처님을 모시고 수용노인들과 신도 등이 예불을 보는데 장소가 협소하여 신행활동에 불편이 많은 것을 신도 및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지금의 대웅전이 완공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자비사는 절이라기보다는 마치 공원처럼 여기저기에 단풍나무와 국화, 모과나무에 넓은 마당은 모두 잔디로 꾸며져 있다.

 

 

자비원 입구 밭에는 엄청나게 큰 바위가 짐을 내려놓고 있으며 조금만 나오면 최근 새롭게 건설하고 있는 낙동강 일선교와 도개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은 왕건(王建) 궁예(弓裔)와 함께 후삼국(後三國)을 다툰 후백제왕 견훤(甄萱)에 대한 역사와 설화가 있어 심심하지 않다.


그 중에서 특히 견훤(甄萱)의 탄생에 대한 설화는 상당히 재미가 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옛날 혼기가 다 찬 양반집 예쁜 처녀가 인물도 고운데다 마음씨도 착해서 인근 마을 뭇 청년들에게 상사병을 주고 했는데 문제는 이 처녀의 버릇이 오줌이 마려우면 집 동쪽 담 모퉁이에 있는 수채 구멍에 가서 볼일을 보는 것 이였다.

 


더 웃기는 것은 이 처녀가 집밖에 나가서도 오줌이 마려우면 언제나 집으로 돌아와 그곳에서 볼일을 보았고, 이처럼 10여년을 하루 같이 한 장소에서만 소변을 본 그 처녀는 어느 듯 철이 들어 의젓한 처녀가 될 무렵부터는 밤에만 그 곳에서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터인가 처녀의 고운 얼굴에는 까닭 모를 수심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처녀의 부모는 처음에는 예사로 알고 며칠 지나면 괜찮겠지 여겼으나 날이 갈수록 딸의 얼굴에 병색이 짙어지자 마침내 무슨 일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짐작한 부모는 딸을 조용히 불러 놓고 자초지종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처녀는 결심을 한 듯이  “이미 오래 전부터 왠 모르는 총각이 밤마다 방에 놀려 와서 새벽에 가고 하는데 아직 그 남정에 대해서 아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동침까지 해서 임신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죽을죄를 지었다고 자초지종을 고했다.

 


딸의 고백을 듣고 난 부모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되 담을 수는 없고 대신 그 총각의 정체를 밝혀서 자기 딸과 혼인을 시키기로 결심하고 부모는 총각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딸에게 그 총각이 밤에 찾아 왔다가 새벽에 돌아갈 때, 바늘에 실을 꿰어 옷섶에 꽂아 두도록 당부를 했고, 처녀는 그날 밤에도 어김없이 자기 방에 찾아온 총각이 옷에 바늘을 꽂아두었다. 

 

다음 날 아침, 날이 밝은 뒤 딸의 방 뒷문에서부터 뻗어 나와 서쪽으로 이어진 기와를 얹은 토담 위를 넘어간 실을 발견한 부모가 그 실을 따라가 보자, 그 실은 마침 반쯤 무너진 토담너머 수북이 쌓여 있는 나뭇단 속으로 들어 가 있었다.

 


처녀의 부모는 급히 머슴을 불러 나뭇단을 허물도록 했고 그 곳을 다 허물고 나니 땅 바닥에는 큰 구멍이 나 있었고, 실은 그 구멍 속으로 들어가 깊은 굴속으로 이어져 있어서 굴을 파들어 가다보니 커다란 지렁이가 몸뚱이에 실 꿰인 바늘이 꽂인 채 죽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해서 지렁이는 죽고 말았으나 처녀의 배는 점점 불러오고 있었고, 그로부터 열 달이 지나자 건강한 사내아이가 태어났으니 이 아이가 곧 후백제의 왕이 된 견훤(甄萱)이라는 탄생의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