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커피 잘 마시면 약된다
소설을 쓰려고 하루 50잔씩 커피를 마셨다는 발자크만큼은 아니어도 우리나라에 커피 애호가가 급증한 건 사실이다. 성인의 커피 마시는 횟수가 일주일에 12.3회로 배추김치(11.8회)와 밥(9.5회)을 앞질렀다는 통계가 나왔다. 그것도 유럽에선 '양말 빤 물'로 지탄받는 '아메리카노'에 의해. '된장녀'들이나 마신다는 값비싼 '테이크 아웃 커피' 대열에 직장인 아저씨들이 합류하면서 순식간에 국민 음료로 등극했다.
밥은 굶어도 커피는 마시는 유행은 과거에도 있었다. 전쟁 직후 붐을 맞은 다방은 1980년대 말 서울에만 1만1000개나 돼 북새통을 이뤘다. 커피에 달걀노른자 하나 떨어뜨리거나, 참기름까지 한두 방울 친 국적 불명 모닝커피가 인기였다. 아침을 걸렀거나 속 편치 않은 사람에겐 해장거리로도 충분했다니 밥을 대신하는 구실도 했다.
노른자 넣지 않는 '신식 커피' 열량도 그에 못지않다. 카페라테, 카페모카는 한 잔 열량이 300㎉를 넘어 밥 한 그릇과 맞먹는다. 식사 후 커피 한 잔의 여유가 비만을 부르는 셈이다. 프랑스 외교관 탈레랑은 커피를 '악마같이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같이 순수하고 사탕처럼 달콤하다'고 찬미했다지만 '밥심'으로 사는 한국 사람에게는 글세올시다. 왼만한 식당에서는 6천원짜리 김치찌개 먹고도 공짜봉지 커피 서비스 하는것도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만 있는 사는재미이다. 그런데 봉지커피가 프림과 설탕으로 인하여 몸에 해롭다니 안마시기도 힘드고 마시기도 꺼림직하다.
'커피는 몸에 해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우유·프림·설탕을 뺀 원두커피는 잘 마시면 당뇨병·파킨슨병·간암·우울증 예방이나 증상 완화에 효과가 있다. 지금까지 나온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질환에 따라 효과를 볼 수 있는 커피의 양은 각각 다르다. 계명대 의대 생리학교실 배재훈 교수는 "카페인 등 커피의 유효 성분에 반응하는 정도가 장기(臟器)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라 말했다.
◇하루 한 잔=당뇨병 막아
커피를 한 잔 마시면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에 비해 당뇨병 발병률이 3분의 1 가량 줄어든다. 2010년 브라질 상파울루대 연구팀에 따르면, 점심시간에 커피를 한 잔 마시는 여성은 마시지 않는 여성에 비해 당뇨병 발병률이 33% 적었다. 배재훈 교수는 "커피의 카페인과 항산화 성분인 클로로겐산이 이러한 효과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커피 한 잔에는 100㎎ 가량의 카페인과 40㎎~150㎎의 클로로겐산이 들어 있다.
◇하루 두 잔=파킨슨병 증상 완화
2012년 미국 하버드대·캐나다 맥길대 연구팀에 따르면, 파킨슨병에 걸린 사람들이 하루에 커피를 두 잔 마시면 증상이 호전됐다. 맥길대 연구팀은 "커피 두 잔에 함유된 200㎎ 가량의 카페인이 파킨슨병을 악화시키는 특정 물질(아데노신)의 작용을 막아 근육 강직 등 운동 장애를 완화시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루 세 잔=간암 예방
2013년 이탈리아 밀라노대 연구팀에 따르면, 하루에 커피를 세 잔 마시면 간암 발병률을 40%까지 낮출 수 있다. 배재훈 교수는 "커피에 포함된 1000여 종의 생리활성물질이 간 기능을 정상화시키는 것으로 추정되며, 그중 어떤 물질이 영향을 주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루 네 잔=우울증 위험 감소
2011년 미국 하버드 공중보건대 연구팀에 따르면 커피를 네 잔 마시는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우울증 발병률이 20% 낮았다. 연구팀은 "카페인이 세로토닌이나 도파민 같은 뇌 신경전달물질 작용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커피 네 잔에 포함된 카페인은 400mg 가량이다.
한편, 커피를 안 마시는 게 좋은 사람도 있다. 임신부와 소아는 카페인에 민감하고, 부정맥·위식도 역류환자는 병의 증상을 악화시키기 때문에 커피를 마시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
/ 김수진 헬스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