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삼성병원에 정기적으로 다니면서 당뇨병을 관리하는 김모(70)씨는 항상 진료 예약 시각보다 한 시간 정도 빨리 병원에 도착한다. 그리고는 병원 로비 왼쪽부터 시작돼 주사실이 있는 6층까지 연결된 계단을 부지런히 오르내린다. 김씨가 이곳에서 굳이 계단 운동을 하는 이유는 계단마다 표시된 칼로리 소모량과 수명 연장 효과를 보면서 느끼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계단 오르기에 재미를 붙인 그는 지하철·관공서등에서도 계단만을 고집한다. 4년 전 당뇨병을 진단받을 당시 혈당 조절 상태를 알려주는 당화혈색소(HbA1c·정상 기준 6.5% 이하)가 8.4%까지 치솟았으나, 일상의 계단 오르기로 현재는 6.1%로 떨어뜨려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강북삼성병원의 ‘건강 계단’
… 2014년 1월 14일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에서
내원객들이 칼로리 소모량과 건강수명 증가가
표시돼 있는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다.
◇계단, 일상 속 헬스클럽
보통 건물 계단은 천덕꾸러기에 가깝다. 대개 엘리베이터가 건물 로비 중앙을 차지하고, 계단은 외진 곳에 놓여 있기 마련이다. 계단 복도는 조명 시설이 적어 어둠침침하고, 환기도 안 돼 공기도 탁하다. 강북삼성병원은 지난해 7월 이런 계단의 이미지를 확 바꾸었다. 조명 시설을 늘려 계단 길을 환하게 하고, 섭씨 20도를 유지해 쾌적한 공간으로만들었다.
계단 두 칸 오를 때마다 칼로리 소모가 0.5㎉씩 증가하고 수명이 8초 늘어난다며, 그 수치를 계단마다 써놓았다. 벽면에 파란색 띠를 그려놓고, 그 안에는 계단을 오르면서 몇 미터(m) 이동했는지 알 수 있게 했다. 계단 벽면 곳곳에는 각종 사진 작품을 걸어 놓았고, 병원 주변에 걸어갈 수 있는 명소도 소개했다. 그러자 하루에 1500여명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계단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예전보다 계단 이용자가 20% 증가했다.
◇왜 계단 오르기인가?
연세대 심장혈관병원 장병철(흉부외과) 교수는 15년 전부터 매일 엘리베이터를 한 번도 타지 않고 계단으로만 이동하며 병원 생활을 보낸다. 외래 1층, 수술실 5층, 연구실 6층, 입원 환자 병실 10층 등을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시로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일상이지만,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건강을 다진다. 하루 걷는 계단 수가 1500개가 넘는다.
장 교수는 "15년 전 입었던 바지를 요새도 입고 다닐 정도로 뱃살, 나잇살이 하나도 늘어나지 않은 것은 온전히 계단의 힘"이라며 "일상 속 등산인 계단 오르기는 심장 기능을 좋게 하는 데도 유용하다"고 말했다. 하버드의대 연구에 따르면, 1주일에 20층 이상의 계단을 오른 사람은 다른 사람에 비해 심근경색증으로 사망할 위험률이 20% 이상 적었다.
계단 오르기는 우리 몸 근육의 30%를 차지하는 허벅지 앞쪽 근육(대퇴사두근) 강화에 효과적이다. 근육량이 증가하면 기초대사량이높아져 똑같은 양의 음식을 먹어도 체지방이 감소해 뱃살이 줄어든다. 지속적인 계단 오르기는 마치 조깅한 것처럼 평상시 심장박동 수를 떨어뜨려 심폐 기능을 최적 상태로 만든다.
바른세상병원 서동원(정형외과·재활의학과 전문의) 원장은 "양다리를 교대로 사용하는 운동 효과로 균형감도 높여 낙상과 골절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며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동작은 허리를 바로 세우게 해 척추를 펴는 근육도 단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릎 연골이 닳은 퇴행성 관절염 환자들은 달리기를 하면 연골 마모가 더심해질 수 있다.
하지만 계단 오르기는 무릎 주변 근육을 강화시켜, 퇴행성 관절염 예방 효과가 있다. 장병철 교수는 "육교 정도 높이의 계단을 숨이 차서 한 번에 못 오를 정도면 심장병이 의심되거나 근골격이 쇠약한 상태"라며 "계단 오르기는 언제 어디서나 하체와 척추 근육, 심장 기능을 강화해주는 전신운동"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