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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 最古의 印刷物

도솔9812 2013. 8. 24. 18:11

우리는 지금까지 한국이 지닌 세계적인 인쇄 문화에 대해서 많이 보았습니다. 그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은 당연히 세계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입니다. 그런데 경이로운 기록이 또 하나 있지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하 다라니경, 국보 126호)이 그것입니다. 혼란을 피하기 위해 이 두 인쇄물의 차이점을 정확히 말해보면, “직지”는 금속활자 인쇄본 중 세계 최고이고 “다라니경”은 인간이 인쇄한 것 가운데 세계 최고입니다. 물론 남아있는 것 가운데 가장 오래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
[無垢淨光大陀羅尼經]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로,
제작 국가를 두고 현재까지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인쇄물

목판본인 다라니경이 발견된 것은 1966년 석가탑에서였습니다. 도굴꾼들이 석가탑 안에 있는 사리함을 훔치려고 탑을 해체하려다 미완에 그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를 기회로 탑을 해체했더니 2층 탑신부에서 사리함과 함께 다라니경이 발견된 것입니다. 그때는 참으로 허술했지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불국사 앞마당에 있는 탑을 도적질하려 했으니 말입니다. 어떻든 이렇게 발견된 이 책의 출간 연대를 추정해보니 751년 이전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이 경이 중국에서 번역된 게 704년이고 불국사가 창건된 게 751년이니 이렇게 추정한 것입니다. 이 책 이전에 만들어진 것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인쇄본은 770년에 간행된 일본의 [백만탑다라니]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것은 그 간행 연대가 751년 이전이니 일본 것을 20년 이상을 앞지른 것입니다.

이런 경을 석가탑 안에 넣은 것은 이 경이 갖고 있는 주술적인 힘 때문입니다. 이 경의 이름에 나오는 다라니는 ‘주문’을 뜻하는 것으로 이 주문에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필사해 탑 같은 데에 봉안하면 무병장수하고 재앙이나 악업을 소멸시켜준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이 경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요? 경전이라고 하니까 꽤 클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탑 안에 들어가는 것이니 커서는 안 됩니다. 이 경은 두루마리로 되어 있는데 그 폭은 6.6cm밖에 안 됩니다. 그러나 대신 길이는 6m나 됩니다. 당시는 제본하는 기술이 없어서 책을 이렇게 두루마리 형태로 만들었답니다. 종이를 여러 장 붙여 만들었는데 종이 각 면에는 62줄이 있고 각 줄에는 평균 8자가 들어 있답니다. 이 정도면 대강 이 책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시겠죠?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된 석가탑의 모습.
1966년 2층 탑신부에서 사리함과 함께 발견되었다.

다라니경에 얽힌 논란들

 

그런데 이 책은 안타깝게도 아직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직지”가 우리나라에 소장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는 것과 비교하면 다소 의외라 할 수 있습니다. 다라니경이 아직 유네스코에 등재되지 못한 것은 몇 가지 논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 첫 번째는 중국과 얽힌 문제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중국과 문화적으로 충돌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다라니경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중국은 이 다라니경이 자기들이 만들어 신라에 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앞서 인용한 직지는 고려의 승려인 백운이 썼다고 확실하게 적혀 있어 문제의 여지가 전혀 없었는데 이 다라니경에는 그런 것이 없어 논란거리가 된 것이지요. 일전에 TV 다큐멘터리를 보니 중국의 어떤 박물관에 이 다라니경의 모사품을 만들어 놓고 아예 자기들 것이라고 밝혀 놓았더군요. 물론 세계 최고의 인쇄물이라는 설명과 함께 말입니다. 사실 중국 입장에서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본도 한국에 뺏겨 심사가 좋지 않을 텐데 세계 최고의 인쇄본마저 이 작은 나라에 뺏기기 싫었을 겁니다.

그러면 중국은 어떤 근거로 이 다라니경이 중국 것이라고 하는 걸까요?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 경은 700년대 초에 중국에서 번역되고 인쇄되어 신라로 보내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 증거로 그들은 당나라 때 여황제였던 측천무후가 만들어낸 한자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아들마저 죽이고 황제가 될 정도로 독한 사람인데 황제가 된 후 자신의 위대성을 돋보이게 하고자 새로운 한자를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이 새로운 한자 가운데 4글자가 우리의 다라니경에 들어있습니다. 중국학자들에 의하면 이런 글자는 당 나라에서만 쓰였으니 당연히 이 다라니경은 중국 것이라는 것이지요. 이 때문에 중국의 과학사를 정리한 것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석학 니덤(Joseph Needham) 교수도 중국의 설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한국학자들의 주장

 

 

이런 중국의 주장에 대해 한국학자들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우선 측천무후가 만든 글자 문제인데 한국학자들은 이 글자가 신라에서도 쓰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글자는 다라니경보다 5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인데 그 정도 시간이면 신라에도 들어와 통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이 다라니경의 종이가 신라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제작 연대가 8세기 초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그런가 하면 이 경을 쓴 ‘먹’이 신라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신라 먹은 질이 아주 좋아 당시 중국에도 수출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주장을 모아 보면 당시 신라는 인쇄술이 발달할 수 있는 제반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한국학자들은 이때 중국에서 초기 형태의 목판인쇄술이 신라에 들어오자 다라니경 같은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이외에도 서체나 필법을 가지고 이 경의 신라 제작설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도 있는데 너무 전문적이라 여기서는 생략했으면 합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 검토해야 할 사건이 또 하나 있습니다. 다라니경과 같이 발견된 것인데 ‘석가탑 중수기’라는 문헌이 있습니다. 이것을 2005년에 와서야 박물관 창고에서 재발견하고 부랴부랴 복원해 내용을 확인했더니 뜻밖의 사실들이 밝혀집니다. 이 중수기에 의하면 고려 초인 1038년에 석가탑을 중수했는데 이것을 바탕으로 이때 다라니경이 안치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하는군요. 그 근거로는, 다라니경 같은 목판 인쇄는 고려 초인 10세기 말부터 11세기 초에 성황을 이루었기 때문에 8세기에 이런 목판본이 나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자세한 것은 이 중수기가 완전히 판독되어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 다라니경이 석가탑을 처음 만들 때 안치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고려 초인 11세기에 나온 다라니경에 비해 석가탑의 다라니경은 책의 구성이 유치하며 판각술도 훨씬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만일 석가탑을 중수할 때 다라니경을 넣었다면 이때의 수준을 유지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석가탑의 것이 연대가 앞설 수밖에 없다는 주장입니다.

 

인쇄문화 발달, 그리고 정보산업의 강국

 

 

 

어떻든 아직까지 이 다라니경은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인쇄물입니다. 그런 사실과 함께 중요한 것은 이 다라니경과 같은 뛰어난 인쇄문화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한국은 IT 강국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IT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조상들의 뛰어난 문화가 있었기 때문 아닐까요? 과거의 IT 산업이 무엇입니까? 활자, 문자, 인쇄술 등입니다. 이 면에서 한국은 과거에 세계에서 수위를 다투었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IT 강국이 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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