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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마지막 비밀 정원, 백석동천

도솔9812 2013. 9. 24. 19:33

 

 

 

 

              서울의 마지막 비밀 정원, 백석동천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자리한 백사실(白沙室)계곡은 ‘서울의 마지막 비밀정원’으로 불린다. 도심 복판에 있으면서도 숲과 계류는 강원도 못지않게 맑고 깨끗하기 때문이다.

 

 

10년전 이 계곡에서 도롱뇽 알주머니 수만 개가 발견됐고, 지금도 이곳에는 1급수에서만 서식하는 도롱뇽(비구니 자율이 천성산 터널공사를 지연시켜 국가적으로 수천억의 손실을 가져온.., 거기만 있는 것도 아닌데...)과 버들치가 살아간다.

 

 

가재도 계곡물 곳곳에서 심심찮게 발견되고 천연기념물인 까막딱구리가 종종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명승(제36호)과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이곳 계곡은 장마철 우기가 돼야 그 계곡다운 멋을 제대로 느낄 수 있지만, 봄.가을에도 오솔길이 갈랫길로 나눠지는 숲속 어디를 따라가도 계곡물에서 물고기가 떼지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고, 계곡숲은 강원도의 작은 산속에 온 듯한 풍치를 풍긴다.


이 계곡에 오면 사람이 붐비지 않아 조용하고 호젓해서 바람을 쐬고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거나 담소를 나눌 수 있어, 마치 조용한 시골로 휴양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백사실계곡은 부암동에 있는데, 부암동은 예부터 도성 밖 경승지로 이름이 높아서 왕족과 사대부들이 별서와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 안평대군(安平大君)의 무계정사(武溪精舍)를 비롯하여 흥선대원군의 별서인 석파정(石坡亭), 반계 윤웅렬 별서, 연산군(燕山君)이 유흥을 즐겼다는 탕춘대(蕩春臺) 등 왕족과 사대부들의 별서, 정자, 풍류 유적이 많다.

 

 

그중에서도 북악산 서북쪽에 터를 잡은 백사실계곡이 백미다. 마치 속세를 접고 신선(神仙)의 세계로 들어온 듯,아래 세상과는 공기부터가 확연히 틀리다. 그것도 서울 도심에서 말이다. 청명한 산바람이 속세의 번뇌(煩惱)에 괴로워 하는 머리와 마음은 말끔히 정화해 준다.

 

 

 

백석동천 유적 앞 오른쪽 산자락을 바라보면, 언덕 정상에 커다란 바위에 높이 110m, 가로 155cm 크기의 '월암(月巖)'이란 각자가 보인다. 이 바위글씨는 18세기에 백사골의 존재를 기록으로 남긴 바 있는 월암 이광여(月巖 李匡呂)의 글씨로 추정되나 정확치는 않다.

 

 

흰 바위가 이어진 숲길을 따라 소나무 군락에 이르면 왼쪽으로 거대한 바위에 ‘백석동천’이란 글씨가 보인다. 동천(洞天)이란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고 운치어린 계곡이 있는 곳을 말한다. 선경(仙景)이라고도 했다. 그만큼 풍광이 좋다는 얘기다. 이곳이 백석동천이란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하얀 피부의 바위와 계곡 암반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백석’이란 중국의 명산인 ‘백석산(白石山)’에서 비롯된 명칭으로 흰 돌이 많은 백악산을 ‘백석산’에 비견한 이름이다. 백석동천은 자연 경관이 수려하며 건물터와 연못, 각자바위 등이 잘 남아 있는 등 격조 높은 별서 유적지이다.


조선후기 서예가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가 백석동천(白石洞天) 일대를 소유했고 이곳에 그의 별서(別墅)가 있었다고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12. 11. 12일 밝혀냈다.

 

 

별서(別墅)란 별장과 비슷하나 농장이나 들이 있는 부근에 한적하게 따로 지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집으로, 일반적으로 산수가 수려한 경승지에 위치하며 세상으로부터의 은둔과 은일을 위해 마을과는 어느 정도 격리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격리 또는 차폐(遮蔽)하기 위해 인공 수림을 조성하거나 언덕 등의 자연물을 이용하거나 우회로를 조성하기도 한다.

 

 

백석동천에 관한 기록으로는 서울시가 발간한 동명연혁고(洞名沿革攷)에 실린 1830년대에 중건(重建)했다는 대목이 유일했다. 그러던 중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12년도 명승 경관자원 조사 연구사업을 수행하면서 추사가 한때 이곳을 사들였다는 기록을 찾아냈다.


연구소에 의하면 백석동천은 백석정(白石亭), 백석실(白石室), 또는 백사실(白沙室) 등으로 불렸는데, 연암 박지원 손자인 박규수(1807∼1877)의 문집 ‘환재집’에는 ‘백석정’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전해 진다.

 

 

이어 추사의 문집인 완당전집 9권에서 “선인이 살던 백석정을 예전에 사들였다.”라는 내용을 찾아냈다. 이에 대해 추사는 자신의 글에 해석을 달면서 “나의 북서(北墅·북쪽 별장)에 백석정 옛터가 있다.”라고 했다. 이런 기록들을 분석해보면 추사는 터만 남은 백석정 일대 부지를 사들여 별서를 새로 지었음을 알 수 있다고 연구소는 말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연구결과를 토대로 백석동천 내의 월암(月巖)과 백석동천 각자 바위들의 서예사(書藝史)적 감식을 통해 글쓴이를 밝혀내고 관련 자료를 비교 분석하여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경관의 원형복원에 필요한 고증자료를 지자체와 관련 학계에 제공할 예정이라 한다.

 

                                           백석동천 별서유적(김정희 소유)

이 계곡의 이름이 백사실인 연유로 별서의 주인이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 1556∼1618)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는 추사 김정희(1786∼1856) 별서 이전에 백사 이항복의 별서였는지는 연대로 보아서는 가능하나 밝힐 근거가 없다. 백사골과 별서터를 덩어리로 묶어 백석동천이라 부른다.

서울 도심 속에 박혀 있는 숨겨진 보석이자 별천지 같은 이곳은 잎이 돋아나고 꽃이 피는 봄도 아름답거니와 여름과 가을, 겨울의 설경(雪景)에 이르기까지 4계절에 모두 절경이다.

그중에서도 늦봄과 여름에는 도심 속의 조용한 피서지로 아주 그만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어느 대통령은 탄핵을 받아 방황하던 시절 이곳을 찾고 '서울에 이런 곳이 아직도 있느냐'고 감탄했다는 일화가 있다.

숲이 매우 무성하여 여름의 강열한 햇빛도 녹음 속에 녹아내려 시원하고 소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톤에 신선한 기운을 되찾으며, 깨끗한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계곡에 다리를 담구거나 독서를 하거나 낮잠을 청하면 정말 낙원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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