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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도솔9812 2014. 1. 3. 09:57

                  

 

                          해 파 랑  길

                                    (2013년 9월 20일 ~ 9월 22일)

 

 

 

                                                         해맞이 공원의 관광 안내소 뒤에 있는 남매 섬

 

 

 

 

 

 

 

 

해파랑 길 걷다.

 

  이번 추석 명절에 사위와 딸이 해파랑 길을 함께 걷기를 권유하여 2013. 9. 20 ~ 22일 까지 2박3일의 일정으로 해파랑길 트레킹에 나섰다.  천안발 KTX 열차에 몸을 싣고 해발랑 길의 시작점인 부산 오륙도 해맞이 공원으로 출발 하였다.

 

해파랑 길 걷기 위하여 우리가 꼭 지켜야 할 안전의 주위 사항으로는

○ 안전여행을 위한 지켜야 할 사항

첫  째 : 안전을 고려하여 여러 사람과 함께 걷는다.

둘  째 : 자신의 체력에 맞는 코스를 선택 합니다.

셋  째 : 노선 및 관련 기관연락처와 현재 위치 정보를 숙지하며 걷습니다.

넷  째 : 물등 비상식품 및 응급약품은 꼭 가지고 떠납니다.

다섯째 : 도로변을 지날 때는 길 가에 붙어서 한 줄로 걸어갑니다.

여섯째 : 불필요한 귀중품과 장신구 등은 휴대 하지 않습니다.

일곱째 : 하절기 AM9시 ~ PM6시, 동절기 AM9시 ~ PM5시 사이에 걷습니다.

여덟째 : 지정된 코스를 벗어나지 말며, 가파른 계곡, 절벽 등의 모험은 피합니다.

아홉째 : 악천후에는 가급적 걷기여행을 하지 않습니다.

 

○ 걷기여행 간단상식


1. 짐 꾸리기 – 가볍게 더 가볍게

장거리 걷기에는 배낭무게를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혹시 필요할지 모른다고 이것저것 넣었다간 걷는 내내 우유부단했던 자신에게 푸념과 질책을 늘어놓게 합니다. 여러 날 걷기를 계획하는 경우, 두세 벌 정도의 여벌을 준비하고 자외선차단제, 모자, 충전기 등도 잊지 말고 챙깁니다. 속옷이나 양말 등 간단한 의복은 숙소에서 세탁하여 사용하는 것도 배낭 무개를 줄이는 방법입니다. 이때 망사 형 주머니 또는 고리 등을 활용하면 걷는 중에도 건조 할 수 있으므로 효과적입니다.

 

2. 먹을거리 – 주식은 곡물류, 간식은 단 것으로

걷기여행 중의 하루 세끼 주식은 지구력을 갖게 하는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으로 하고 간식은 에너지로 곧바로 쓰일 수 있는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단당류가 적합합니다.

 

또 장거리 여행시에는 적당한 시점에 식당이 없을 수도 있으므로 두 끼 분량의 비상식(빵, 시리얼바, 에너지 젤 등)을 항상 준비 합니다. 에너지 젤은 순간적으로 많은 양의 에너지를 보급함으로써 갑작스럽게 기운이 빠지거나 힘이 들 때 도움이 됩니다.

3. 숙박 – 휴가 시즌은 비박도 각오해야

국민 휴양지인 동해안은 휴일과 주말에 잠자리 찾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되도록 사전에 숙박을 예약하되 예약이 어렵거나 현장에서 숙소를 구하기가 어려우면 가까운 관공서, 마을회관을 찾아 도움을 청하는 방법도 고려합니다.

 

여름 성수기 휴가철에 한낮에 해수욕을 하거나 그늘에서 쉬고 야간을 이용해서 걷는 방법도 좋습니다. 다만 야간 도보 시에는 안전을 위해 배낭 뒤에 깜박이는 붉은 안전등을 달아 운전자가 보행자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며 보행구간이 군부대의 야간 통행 제한구간이 아닌지 미리 확인해야 합니다.

 

4. 걷기에 수반되는 통증 상식

걷기를 할 때 흔히 맞닥뜨리는 아픔은 발바닥 물집, 어깨와 허리의 통증, 무릎과 발목의 관절 통증이 있습니다. 발바닥 물집의 경우, 약국에서 파는 얇은 천 테이프를 평상시 물집이 잘 생기는 부위에 감고 걸으면 물집 잡히는 것을 예방하거나 물집이 심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어깨와 허리 통증은 배낭의 무개 및 착용방법과 연관됩니다. 먼저 장거리용 배낭은 허리벨트가 허리의 2/3이상을 감쌀 수 있는 두툼한 것으로 준비합니다.

 

스스로 어깨가 약하다고 생각되면 허리벨트를 단단히 조이고 어깨끈을 약간 헐렁하게 하여 어깨의 부담을 줄이고 반대로 허리가 약한 경우에는 어깨끈을 꽉 잡아매고 허리벨트를 느슨하게 풀어줍니다. 이렇게 끈 조절을 통해 허리와 어깨의 부담을 번갈아 가면서 줄여주는 것이 통증을 예방하고 줄이는 요령입니다.

 

무릎과 발목 통증은 예방이 최선입니다. 스스로 판단 할 때 관절에 이상이 올 수 있다고 생각되면 처음부터 스틱을 사용하는 노르딕워킹을 권합니다. 흡사 네 발로 걷는 것과 비슷한 노르딕워킹을 하면 관절의 부담을 30퍼센트 정도 경감 시킬 수 있습니다.

 

                                              부산역

일단 통증이 온다면 가급적 걷기를 중단하고 가까운 병원이나 보건소에서 진료를 받고 의료진의 처방을 따르도록 합니다. 관절 부상은 생각보다 쉽게 낮지 않고 완벽한 치유가 어려울 수 있으므로 무리한 보행은 삼갑니다. 또한 규칙적인 스트레칭은 통증과 부상 예방에 효과적이므로 자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 1 일차 (2013년 9월 20일)

이상과 같이 안전의 주위 사항을 숙지하고 부산역에 도착하였다.

해파랑 길 시작점인 오륙도 공원 가는 길은 역 앞 시내버스 승강장 27번 승차 10시 30분경에 이기대 입구의 오륙도 SK후문에서 하차 오륙도 해파랑 길 관  광안내소에 들어가 간단한 1코 스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시작 하여 광안리 해변을 거쳐 해운대 해변을 지나 미포 까지

 

 

                                                                     해맞이 공원의 관광 안내소

총 거리 17.7㎞, 소요시간 5시간 50분에 대한 안내를 받은 다음에 바다는 수 없이 보아 왔지만 이곳 관광안내소의 넓은 유리창을 통해서본 남해 바다의 풍광이 이때처럼 시원하고 넓게 보이는 것이 흔히들 많이 말하는 그간의 묶었던 체증이 뚫리는 기분으로 갑자기 마음이 시원함을 느끼면서 10시 40분경에 해파랑 길 시작점에서 출발 합니다.

                      해파랑 길 관광 안내판

 

해파랑 길이란

동해안의 “떠오르는 해”와 푸르른 “동해바다”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이란 뜻으로 부산광역시 오륙도 해맞이공원을 시작으로 강원도 고성 통일 전망대에 이르는 초 광역 걷기 길이다.

 

2009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으로 “(사)한국의 길과 문화”와 각 지자체 및 지역 민간단체가 뜻을 모아 조성중이며, 동해안을 따라 총 10개 구간 50개 코스가 거리 770,9㎞의 노선을 잊는다.

 

오륙도 해파랑 길 관광안내소에서 왼쪽 산 능선을 따라 잘 정비 된 가파른 길을 따라 군데군데 이정표가 잘 정비 되어서 이를 보면서 쉬엄쉬엄 넓은 바다를 경치 벗 삼아 올라가면 해발 약 2백m 8부 능선에서 바라보는 해맞이 공원 앞의 두개의 섬이 남매 처럼 나란히 물위에서  

수영 하듯이 있는 풍광이 정말로  아름답고 이곳부터 나무 숲길의 해안 절벽 길 따라 내려 오

 

                                    관광 안내소 앞 왼쪽 능선

 

                      능선에서 바라본 두 개의 남매섬

는데 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또 한 맞은편에서는 올라오는 많은 사람과 교차하며 좁은 길을 서로서로 피해가면서 세월아 네월아 하며 걷는 그 기쁨이란 말로 표현하기 란 참으로 쉽지 않다.

 

 

오늘의 이 기쁨 해파랑 길을 걷게끔 하여준 사위와 딸에게 고맙게 느끼며 해파랑 길을 걸어가는 길이 배가 될수록 걷는 즐거움도 배가되는 것이 누구도 같지 못 할 만큼의 행복감에 취하여 뒤를 따라 걸어가는 기쁨이 마치 나 혼자만이 누리는 제일가는 사나이 인 것 같다.

 

길을 걷다 보니 사랑의 한이 맺혀진 상사화(花)를 볼 수 있고.......

 

                        아름답게 핀 상사화

 

◈ 상사화의 전설

  

옛날 한 마을에  너무나 사랑하는 부부가 오래도록 아이가 없어  간절히 기도한 가운데 늦게야 태어난  아이가 딸 이였다 합니다.

그러다  아버지가 병들어 돌아가시어서 극락왕생하시라며 백일동안 탑돌이를 하였는데 처녀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큰 스님의 시중을 드는 스님 이였다 합니다.

 

누가 볼세라..... 마음을 들킬세라.....

안절부절 두 근반 세 근반, 분홍으로 물들어 감이 하도 애절한 가운데 말 한마디 못하고 어느덧 백일은 다가왔으니 불공을 마치고 처녀가 집으로 돌아가던 날 스님은 절 뒤 편 언덕에서  하염없이 처녀를 그리워하다 그만 그날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여 운명을 달리 했다 합니다.

 

그 다음해 봄 절가에 곱게 핀 한 송이 꽃이 그 스님의 무덤 옆이라 언제나 잎이 먼저 나고 잎이 말라 쓰러져야 꽃대가 쑥~하고 올라와서는 꽃송이를 고개가 무겁게 피었던지라 이름 하여 ‘상사화’라 한답니다.

세속의 여인을 사랑하여 말 한마디 못한 그 스님의 애절함이.......

그래서 「이 룰 수 없는 사랑」이야기 상사화 꽃말이라 합니다.

                    

어느 꽃이든 꽃말은 슬프고 아련한데 대부분 여자가 남자를 짝사랑 하다 져 버렸다 하여 이야기가 전해 오지만 이 상사화는 이렇게 남자 가 상사병에 걸린 이야기 입니다 

 

  

                                       농바위 가는 숲길

 

포진의 삼거리에서 농바위 쪽으로 계속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용호중대 밑에서 위로 가지 말고 계속 농바위 방향으로 걷는다.

 

               농바위 정자에서 바라본 해운대

해파랑 길 걸으며 40여분이 지나서 해변 가 농바위(해파랑 길)쪽으로 해안 산책로를 걷다보면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시원함을 느끼며, 저 멀리 해운대가 보이고 바로 앞의 바다는 파도에 바위가 부닥치면서 하얀 물보라를 이루는 물결의 춤을 바라보면서 여유 있게 한발 한발 걸으면 농 바위 정자에 올라 잠시 쉬면서 땀을 닦고 우측으로 보면 오륙도 해맞이공원과 형제처럼 마주보고 앉아있는 보기 좋은 경치를 자랑하며, 앞에 수평선이 넓게 펼쳐진 바다의 넘실대는 풍광이 그 야말로 아름답다. 

 

        

                                      농바위 안내판 아름답다  

농(籠)바위란?

농이라는 것은 버들 채나 싸리 따위로 함처럼 만들어 종이를 바른 궤를 포개어 놓도록 된 가구(옷 따위를 넣어 두는데 사용)을 말한다.

제주의 성산포 해녀들이 남천동 해안가에 자리를 틀어 물질을 하면서 이기대와 백운포 해안가의 특정 바위 등을 기준으로 서로 연락하는 수단으로 농을 닯은 바위를 농 바위로 불러 왔다는 설이 있다. 한편 2001년 발간된 “남구의 민속과 문학”에는 부처가 아기를 안고 있는 듯 한 모습으로 배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돌 부처상 바위라고도 기록 하고 있다.

 

농 바위를 지나 밭골새에서 치마바위(해파랑 길)쪽으로 해안 산책로를 팔자걸음으로 주위 경관에 취하다 보면 치마를 펼쳐 놓은 것 같은 모양의 치마바위에 다다른다. 넓게 펼쳐진 치마바위에서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는 일명 강태공들이 서로 자기가 원조라고 하는 듯이 낚시를 드리우고 폼 내고 있으며,

 

여기서 부터는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이기대 공원구역으로 해안가의

 

                   이기대 해안 산책로에서 바라본 해운대

자연 풍광이 바다와 어울러져서 남해바다의 장쾌한 파도 물결에 들려오는 힘찬 소리와 빠져 나가는 은은한 물결소리의 조화를 느끼면서 기막힌 절경 걷는 귀의 즐거움은 이곳 아니면 들을 수 없을 것 같다.

 

 

이기대 해안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걸어오느라고 수고 하였다고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와 땀을 닦고 앞을 내다보면 부산의 명물로 등장한 광안대교가 눈앞에서 그려진다.

 

 

             시비 “흙의 살들-김규태”

내 나이 고희(古稀)가 넘어 딸, 사위가 권하고 나 또한 걷고 싶었던 길을 걸으니 가슴은 심장의 기쁨에 강한 펌프질로 마치 그 소리가 딸, 사위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인 것 같았다.  그래서 가족이라는 점은 감출 것 없을 때 비로소 이해가 되고 내가 너, 너가 나, 되어 어려울 때 힘이 되고 친구와 벗이 되어 지금 같이 기쁠 때 배가되고 우주가 음양으로 나눈 그 근본이치가 제대로 살아나는데, 엄서방 참말로 고맙고 고맙네.....

 

 

가는 길 내내 목재로 잘 정비된 구불구불 이기대 해변의 해파랑 길을 따라가면 시원한 바닷바람과 어울려서 파도가 바닷가에 부딪혀 내는 파도 음에 발걸음을 맞추어 걸어가면  시비 “흙의 살들 – 김규태”의 삼각형 돌에 새겨진 시를 읽어 보고 또한 눈앞에는 펼쳐진 광안대교에 분주히 오가는 차량이 서서히 눈앞으로 다가오고,

 

여기서 이기대의 유래에 대해서 기술 하면

                                이기대 유래 안내판

이기대의 이름은 동래영지(東萊營誌)에 나타난다. 동래영지는 조선시대 좌수영의 역사와 지리를 소상히 소개하고 있으며 좌수사로 있던 이형하(李亨夏 1850년 재임)가 종전의 기록을 토대로 보충 수집하여 기록한 책이다.

            공룡발자국 안내판

이 동래영지 중 산천을 밝힌 부분에 이기대(二妓臺)라고 적고 “左營南 十五里 上有 二妓臺云(좌수영에서 남쪽으로 15 리에 있다. 위에 두 기생의 무덤이 있어서 그리 말한다)”고 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향토 사학자 최한복(崔漢福 1895~1968 수영 출신)의 말로는 임진왜란 때 왜군이 수영 성을 함락시키고는 경치 좋은 이곳에서 축하잔치를 열었는데 수명의 기녀 두 사람이 잔치에 참가했다가 왜장(倭將)에게 술을 권하고 술 취한 왜장과 물에 빠져 죽었다는 것이다. 그 두 기생이 이곳에 묻혀있어서 이기대(二妓臺)라 한다고 하나 그에 대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좀 더 가면 공용의 발자국에 대한 안내표지판에 이곳은 2000년 3월 천체, 지구, 동식물 및 인류사 연구단체인“자연사환경학회”의 조사로 약 6,500만 년 전(중생대 백악기말)에 살았던 대형 초식 공용인 울트라사우르스의 발자국이 추정되는 화석이 발견된 곳입니다. 라는 안내판을 보고 해변에 바위에 공용의 발자국을 찾아보시는 것도 좋을 것이다. 결국은 찾지는 못하였지만.......

          시비 “폭풍우가 몰아치는 이기대에서-박상호”

     시비 앞에 펼쳐진 광안대교를 비롯한 그 외 여러 곳

여기서 조금 가면 검은 돌 시비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이기대에서 – 박상호” 글을 읽어보고 앞에 펼쳐진 광안대교를 비롯하여 장산, 부산요트 계류장, 마린시티, 동백섬, 누리마루APEC하우스, 해운대 해수욕장, 미포유람선 터미널, 달맞이 공원 등이 한눈에 펼쳐지는 것이 영화관의 스크린에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멋진 장관에 이만한 보람과 감동을 어디에서 얻겠는가?

 

 

이기대 공원 해변의 해파랑 길을 계속 가면 또 시비 “봄이 오는길 – 최계락”의 시도 읽어보고 조금만 가면 용호동 섶 자락 가까이에 일제 때부터 ㈜대한광업으로 이름 한 광산이 있었다고 하는 “여기는 구리(銅)광산” 안내판에 움푹 파여진 곳도 보고서 숲길을 가다 해안가로 나오면 바로 “동굴체험”장이 나타나면 한번 쯤 동굴체험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시비 “봄이 오는 길-최계락”

 

              구리 광산 안내판

 

                                          동굴 체험 장

계속해서 잘 정비된 해안가 길을 따라 한참을 가면 동생말 전망대에서 앞에 펼쳐지는 광안대교를 비롯하여 이국에서나 볼 수 있는 풍광이 펼쳐진다. 

 

                            이기대 해변의 해파랑 길 따라 조금 가면 동생말

 

                                          이기대 해변의 해파랑 길

                                     이기대 공원 안내도

여기서 이기대 공원 안내도를 한번 보고 해변 능선을 돌아 해파랑 길 따라가면 동생말이 나오면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 할 수 있는데 모두가 횟집 이고 하여서 우리는 조금 내려와서 광안리에 인접한 메가마트 식당 코너에 가서 6.25때 부산의 애환이 담긴 유명한 음식을 맛보기 위하여 “밀면” 으로 중식을 해결하고 광안리로 향하였다.

 

 

  광안리 해변에 도착 하니 내 눈을 의심케 한다.

  여기가 한국의 부산이 맞는지.......

해수욕장에서는 시민과 외국인이 몰려 늦더위를 식히고 있고, 이국적으로 잘 꾸며진 도로변 노천 Cafe에서는 3, 3, 5, 5, 짝을 지어서 즐겁게 담소하며, 한 편 애완동물인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서 의젓이 의자에 앉혀 놓은 것이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외국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을 자아내고 있어 내 눈을 의심 하여 눈을 비비고 또 비비였다.

                                       광안리의 해변 도로

              광안리 해수욕장의 외국인

 

                광안리 해변도로 카페

  나는 광안리 해변의 정취에 푹 빠져서 걷고 있노라니 그 아름다운 풍경을 렌즈에 담아보지 못하고 이렇게 한국에도 좋은 곳이 있는데 까지 오게 하여준 딸과 사위에게 고맙다는 표현은 하지 못하고 정취에 빠져 걷고 있노라니 광안리 해변을 지나 우리가 묶을 숙소인 아르피나 유스호텔에 도착 하여 우리들의 어깨에 신세를 지고 메고 온 배낭을 벗어놓고 오늘의 마지막 해파랑 길 마지막 코스인 해운대로 향하였다.

                       동백 공원 안내도

 

  해운대에 가기에 앞서 해운대 서쪽 끝에 있는 동백섬을 우선 동백섬을 탐방 하고 해파랑 길을 따라 해운대로 걷고자 한다.

 

 동백섬은

  동백나무가 자생하는 남해안에는 동백섬이란 이름을 가진 섬이 많다.

현재 해운대구의 해운대도 일반 통칭은 동백섬이다. 옛날에는 섬이었으나 장산폭포를 흘러내린 물과 좌동 동쪽 부흥봉에서 내려온 물이 합류한 봄 내가 좌동, 중동, 우동지역 충적평야의 모래를 실어 내려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 이다.

 

[동국여지승람]에는 해운대는 현의 동쪽 18리에 있고 산이 바다 속에 든 것이 누에머리 같으며, 그 위의 모두 동백, 두충, 송상, 총롱, 창취로 사시가 한결 같다. 봄과 겨울사이동백꽃이 땅에 쌓여 지나가는 말발굽에 밟히는 것이 3~4치나 된다. 신라 최치원이 일찍이 대를 쌓아 유상 하였다는 유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고 했으며 1863년 일본에 통신사로 같던 조엄의 해사일기 에는 “해운대는 대 앞에 괴암이 층층으로 층이 지고 곡곡으로 굽어졌는데, 해천만리가 높이 열린 것 같아 흉기를 활짝 열고 만상 모두를 접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해운대 동백섬은 최치원 선생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유적지 일뿐 아니라 예로부터 그 경관이 매우 뛰어나 유명한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동백섬 주위에는 도액나무와 소나무가 울창하고 섬의 정상에는 최치원 선생의 동상과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참고자료 : 동백섬 안내판>

 

  해운대를 향하여 해파랑 길을 따라 걷다보면 동백섬 가는 길이 나와 동백섬을 가로 질러 최지원 유적지를 올라가서 유적을 살펴보고......

 

  孤雲 崔致遠 先生 略傳

  최치원 선생은 신라 헌안왕(新羅 憲安王) 첫해 서기 857년 경주 남천(南川)가에서 나서 12세에 당(唐)나라로 유학 가셨다. 18세에 과거에 등과하여 율수현위(溧水縣尉)가 되고 25세에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를 지어 중원(中原) 문단을 흔들고 시어사(侍禦史) 벼슬과 자금어대(鈭金魚帶)의 하사를 받아 외국 사람으로서 젊은 나이에 큰 영광과 기염을 토 했다. 28세 고국에 돌아와 시독(侍讀)이 되었다가 질투를 입어 태인, 함양, 서산, 등 여러 고을로 나돌면서 명문과 명시를 많이 남기셨다.

 

37세에 정치의 급선무(急先務)를 아뢰어 아찬(阿湌)의 직위를 얻었으나 기울어 기는 국운을 구 할길 없어 벼슬을 버리고 40세로 방량의 몸이되어 전국의 여러 곳을 다니시다가 마지막에는 처자(妻子)를 이끌고 가야산 합천으로 들어가 갓과 신을 숲속에 남긴 채 가신 곳을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뒷날 고려조에 이르러 해동유학(海東儒學)의 시조(始祖)로 받들고 문창후(文昌候)의 시호를 내리시니 그 도덕과 학문을 숭상해 마지않았다.

 

  위와 같이 최치원 선생의 약전도 읽어 보고 동상 주위에 글도 한번쯤은 읽어보는 것이 바람 직 좋을 듯하다.

 

  최치원 유적지를 한번 둘러보고 내려가는 길로 내려가면 순환 길과 마주치는 곳에 정자가 있고 그 앞에는 등대 전망대가 있어 이곳에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망망대해에 펼쳐진 풍광을 바라봄직도 하다.

             등대 전망대 앞에 외국인의 기타 치는 모습

 

                                         최치원 선생 동상

  마침 등대 전망대 앞에서는 외국인이 기타를 치고 있는 것이 아마도 무전여행 와서 금전이 떨어져서 기타를 치며 도움을 요청 하는 것 같다.

 

 

  전망대를 등지고 가면 출렁다리를 건너서 바닷가에 황옥공주 인어상이 있는데 이에 대한 전설은 아득히 먼 엣 날 인어의 나라 “나란다”의 황옥공주는 “무궁나라” 은혜왕에게 시집을

 

               동백섬에서 해운대로 가는 출렁다리

왔습니다. 고국이 그리운 황옥공주는 보름달이 뜨면 밤이면 바닷가에 나와 바다속 수정나라 외할머니가 주신 황옥보석에 비친 “나란다”를 바라보며 눈물을 지었습니다.  애절하고 신비로운 전설의 황옥공주는 이를 동백섬 바닷가에서 부산시민과 함께 영원히 살아가리라.

 

                                        황옥공주의 인어 상

 

    덴마크에는 “인어공주”, 해운대에는 “황옥공주” 안내판

황옥공주 인어 상을 보고 해운대 해변에 도착 하니 역시 이곳도 외국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아마 부산에서도 제일 높은 누리마루APEC하우스라든지 9월의 마지막 늦더위 을 만 킥 하기 위하여 몰려든 시민과 일광욕을 즐기는 외국인들에 의하여 마치 외국의 해변 같기도 하지만 이곳 역시 도로변은 잘 정돈되고 꾸며진 멋진 건물의 노천 Cafe에서 연인, 또는 친구, 지인들과 즐겁게 담소하는 풍경에 흠뻑 취하여 정신없이 걷다보니 렌즈가 손에 들려 있어도 나중에서 안 사실이지만 그 좋은 경관을 렌즈에 담아내지 못하였다.

                                        해운대 해수욕장

 

또 한 해운대의 해변을 걸으며 “돌아와요 부산항에-조용필”, “해운대 엘레지-손인호” 등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조용필 

                해운대 엘레지-손인호

노래비 보고 노래 말에 따라서 흥얼거려 보고, 조선 선조시대의 인물 이안눌의 비도 읽고서 선조들의 얼을 되 새기며 현대 예술을 해변에 설치된 각종 조형물을 감상 하고 해운대의 풍광을 눈으로 보고 머리에다 그리고 가슴으로 새기며 걷고 한편으로 욕장에서의 젊음을 발산 하는 사람들은 보노라면 대한민국 속에 있는 외국이 아닌가 하는 착각의 의심을 가져 보게 한다. 

          조선 선조시대 이안눌의 비

 

                 해병의 조형물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은 꼭 한 번쯤 가서 해파랑 길을 걸어도 보고 한국 속에 있는 외국이 바로 광안리와 해운대 해변인 곳을 체험해 보는 것을 권장 하고 싶다.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미포로 향하였는데 미포는 작은 전형적인 한국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어촌 마을 이었다. 이로서 총 거리 17.7㎞ 완주 하였고 소요시간을 5시간 30분이 소요 되었다.

 

  미포마을에 대하여

  미포라는 지명은 소가 누워있는 모양인 산(와우산)의 말미에 해당하는 곳이란 뜻에서 유래된 포구이다. 와우산 기슭의 동해 남부선 철도(부산-경주 1934, 7, 15개통)는 거리가 가까운 중동-송정역 간을 연결하여 철도를 부설하지 않고 엄청난 공사비를 들여서 만든 우리나라 유일의 임해 철도선이다.

                       미포(尾浦)마을 안내판

 

미포 마을은 바다의 수산업 풍속인 풍산 제 별신굿을 음력 10월 보름부터 5일 동안 치르며 이 기간 동안 마을 주민은 풍어를 기원 하면서 치성을 드린다.

 

미포 항에서 2005년 APEC 정상회의를 기념해 아시아 국가들의 단합과 번영을 기원하는 뜻에서 허리덤에 등대를 세웠다.  APEC 등대는 해운대 뱃길을 밝히는 길잡이 등대로 새로운 볼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선창횟집에서 만찬

 

  우리는 이 어촌 마을에서 오늘의 걷기 자축을 위하여 이곳 선창횟집에서 나와 딸, 사위하고 셋이서 식당 2층 풍경이 좋은 창가에 앉아서 생선회를 겹 들여 저녁 자축 중에 유리창에 통하여 바라보는 남해의 야경을 이국적인 풍광에 흠뻑 적시어서 소주 한 잔이 목에 넘어 갈 때 그 멋과 맛을 글로서 어떻게 표현 할지 감정이 나오지 않으며,

 

확 트인 검푸른 바다를 바라보니 나의 마음도 확 트인 것 같아 그 동안에 정신없이 앞만 보고 살아온 내 인생의 고달 푼을 사위 앞에서 벗 삼아 흉금 없이 떨어 놓고 이야기 할 때의 그 소주 한 잔의 맛이란 이루 형용 할 수 없었다.

                                 남해의 야경에 흠뻑 취해 본다.

 

  사위가 내 가족의 일원이 된지 벌써 수년 동안에 있었던 괴로움을 이겨내고 묵묵히 참아온 사위가 내 가족의 일원으로서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

나는 이 자축연에 한 잔의 소주를 먹을 적마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가족만을 위하여 사랑 하리라…….

 





제 2 일차 (2013년 9월 21일)


  09시 05분에 달맞이 길에 도착 하여 문탠로드 길(달맞이 길, 해파랑 길과 겹침)을 걸어서

 

                     문텐로드 길 안내판

  문탠로드 길 유래

  달맞이 길이 새삼 주목 받게 된 것은 해운대구가 2008년 4월 문탠로드(Moontan Road)라는 이름의 걷기 코스를 만들면서 부터이고 문탠은 선탠(Suntan)에서 착안한 말이다. 문탠로드는 “달빛을 받으며 가볍게 걷는 길이란 의미이다.”

 

                         ILLUA 호텔

꽃잠 길, 가온 길, 바투길, 함께 길, 만남 길 등 5개의 테마길(총 2.2㎞)를 돌아 출발점으로 돌아오게 되며 “가온”은 온도를 더한다는 뜻이고 “바투”는 두 세상이 아주 썩 가깝게 라는 순수 우리말이다. 야간에도 걸을 수 있으며, 조명은 새벽 5시부터 일출, 일몰부터 밤 11시 까지 켜져 있다.

 

 

문탠로드 길(달맞이 길)을 조금 올라가다 보면 한식 건물의 ILLUA 호텔이 좌측으로 있고 우측으로는 남해의 풍광과 아울러 시계 3시 방향으로는 광안대교가 우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위용을 자랑 하고 있다.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김용택

 

            문텐로드를 빠져 나오며-박진규

                       문텐로드 길(갈매기 길, 해맞이 길, 해파랑 길) 우측의 풍광

 문탠로드 은 목재를 사용하여 잘 만들어진 길의 시비(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김용택, 문텐로드를 빠져 나오며-박진규) 등을 보고 우측의 풍광에 취하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다다르게 되는데 정상 달맞이고개에는 해월정이 있어 이를 둘러보는 것도 걷기 여행의 별미 인 것 같다. 해월정 앞의 돌 비석에 이곳에 계수나무가 있다고 적혀 있다.

 


  달맞이 길이란

                     달맞이 길 안내문

  달맞이 길은 해운대를 지나 와우산(臥牛山)을 거쳐 송정해수욕장 까지 가는 약 4.5㎞의 해안 절경을 따라 15번이나 굽어지는 고갯길로 이명 15곡도(曲道)라 하며 이곳에서 보는 저녁달은 아름답기 그지없이 대한 팔경의 하나로 손꼽힌다. 달맞이 길이 시작되는 이곳은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라 하여 와우산이라 불러지며 1983년 달맞이 동산이 조성 되어 달맞이 깅릐 상징으로 사랑 받고 있으며 1997년 건립된 해월정은 일출, 월출의 장관을 함께 감상 할 수 있는 장소로 유명하다.

 

 

특히 달맞이 언덕 주변에는 김종성 추리문학관을 비롯해 동백 아트세터 등의 여러 화랑이 밀집해 있고 그림 같은 카페와 관광식당이 줄비해 동양의 몽마르뜨 언덕이라 불리 우며 새로운 문화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해월정(海月亭)

  서기로운 구름 맴도는 동해의 푸른 기상 오륙도 굽이돌아 하늘에 이른 해운대 동백꽃 붉게 되어 긴 바람 외워싼 와우산 드리우고 바다 건너 그리운 님에게 꿈을 실어 봄빛 나르는 갈매기 늘 푸른 사랑 정랑이 오가는 날이 되어 솟은 동백섬 천 년 숨죽인 바닷길 열리는 바단 자리 달맞이길 오르면 찬란한 빛으로 일어서는 볼수록 유정한 해운대 저녁 달 자연과 마음 하나 되어 신선이 되는 대한 팔경 이름 하여 해월정 이라

            1997년 2월  해운대 구청장

                      길 가르쳐 준 외국인

 

 

                                 해월정 내려와 좌측 도로변의 Cafe

  해월정을 내려와 좌측 도로변의 Cafe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이국적으로 풍경을 자아내어 여행자의 볼거리를 선사하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얼마쯤 내려오면 삼거리에서 해안가 쪽으로 내려와서는 다시 좌측으로 꺾어서 가는데 우리는 달맞이 길을 잘못 들어서 길에서 지도 보고 길을 찾고 있으니까, 강아지와 함께 조깅하는 외국인이 유창한 우리말로 “어디로 가는지” 물어서 “송정 해수욕장 가는 길을 물으니” 외국인이 친절하게 나를 따라 오라 하면서 길을 안내 하는 데“ 우리는 외국인이 말하는 도로보다도 한 블록 아래로 내려와서 길을 일어 버린 것 이다.

                  해마루 정자

 

 

                   숲속 길

 

 

              십오굽이 달맞이길 관광 안내도

 

 

        숲 사이에서 본 송정 해수욕장 전경

  우리는 외국인의 고마운 도움을 받아 해파랑 길을 따라 숲속으로 걸어서 한참을 가니 해변 가 언덕이 나타나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시원하게 펼쳐진 전경을 보고 구덕포 쪽으로 나아가면서 좌측 산 정상에 “해마루” 정자를 바라보고, 우측으로 펼쳐진 풍광에 흠뻑 취하여 걷는데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았다. 어제도 느꼈지만 딸 과 사위가 나를 이렇게 좋은 길을 걷게 하여 주었기 때문에 고맙고 또한 이러한 즐거운 행운을 어디 가서 맛을 볼까?

 

 

십오 굽이 달맞이길 관광 안내도를 보고 숲길을 걸으며 숲 사이로 보이는 송정 해수욕장을 힐끔 보면서 계속 걸으면서 전망대가 나오면 우측으로 저 멀리 구덕포 마을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구덕포 마을 안내

  구덕포(九德浦)마을은 약 300년 전에 동래군 월난면에 속했던 포구로 왼쪽으로는 송정 해수욕장을, 오른쪽으로는 동해 남부선철도와 푸른 산이 뻗어 있는 갯마을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양식업과 근해어업을 주업으로 하고 있다. 구덕포 당산이 마을에서 철로를 건너 약 800m쯤 되는 서남쪽 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마을 중간 지점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수령이 약 300년 된 해송, 마치 용이 꿈틀거려 하늘위로 올라가는 듯 절묘한 현상을 한 와송이 있다. 길거리에서 있는 장승, 누운 꾸불꾸불한 와송을 주민은 마을 수호신으로 장군 나무라 부르며 거릿대 장군 제를 지낸다. 그리고 이 당산나무 와송을 해운대구 보호수(2006, 6, 26)로 지정하였다.』 

 

               구덕포 마을 전경

 

            구덕포(九德浦)마을 안내문

  무궁화 열차는 시간을 맞추어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좌측으로 송정 해수욕장의 풍광을 바라보면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잠시 쉬었다가 송정 해수욕장을 향하여 발걸음을 가볍게 걸으며 나아간다.

            태양광 집열판 설치 건물

  시원한 해변 가 해파랑 길을 걸어가면서 송정 해수욕장에 도착 하니 이곳은 광안리와 해운대 해변 하고 달리 늦더위에 바닷가를 즐기려는 많은 사람은 사람이 보이지 않고 쓸쓸히 한 산해 보이며 또한 상가역시 추석 명절 끝이라서 그런지 거의 모든 상가들이 문을 닫은 상태이며 그래도 바닷가에서 서핑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파도에 의지 하여 몸을 맞기고 있으며......

 

                             송정 해수욕장 전경과 서핑을 즐기는 사람

 

  우리는 송정 해수욕장을 거쳐 해파랑 길인 도로로 걸어가는데 도로변 좌측의 건물에는 태양광 집열판이 설치되어 있어 친 환경의 에너지를 활용 하고 있으며, 이곳을 지나면 좌, 우 양측 도로변이 한 참 개발 중이라 도로변 걷기가 위험 하여서 조심조심 하며 걸으며, 좌측으로는 규모가 상당히 큰 규모의 Studio World가 개발 중에 있는 위험한 도로를 조심 하면서 해동용궁사 입구 삼거리에 도착 하니 부처님이 불자의 시주함이 놓여 있고,

 

               Studio World 공사장

 

 

          해동 용궁사 삼거리 입구 불상

 

정오 12시 라서 그런지 배님께서 출출 하시다고 하여서 입구 근처에 마땅한 먹 거리가 눈에 띄지 않아서 중화 음식점에 들어가 요사이 흔히 많이 하는 쟁반 짜장은 시켜 배님을 요기 시켜 드렸더니 고맙다고......

 


용궁사 창건 역사

옛부터 숱한 신비와 변화를 간직하고 인류와 역사를 함께 해온 바다! 잔잔함의 평화로움이 있는가 하면 폭풍우를 동반한 성냄도 있다.

대개의 사찰이 山中 깊숙이 있는 것과는 달리 용궁사는 이름 그대로 검푸른 바닷물이 바로 발아래서 철석 대는 수상법당(水上法當)이란 표현이 옳을 것이다. 무한한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님은 이런  바닷가의 외로운 곳 (海岸孤絶處)에 상주하시며  용을 타고 화헌 하신다 하셨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관음신앙이 해안이나 섬에 형성되어 있으니 『양양낙산사, 남해보리암, 해동용궁사』로 한국의 三代 관음성지의 한 곳이며 바다와 용과 관음대불이 조화를

 

                  용궁사 창건 歷史

이루어 그 어느 곳 보다도 신앙의 깊은 듯을 담고 있다. 동해의 최남단에 위치한 해동 용궁사는 1376년에 공민왕의 왕사(王師)였던 나웅대사(懶翁大師)께서 창건 하셨다. 和尙께서 경주 芬皇寺에 주석 하시며 修道 하시는데 나라에 큰 가뭄이 들어 들에는 곡식과 풀이 말라죽고 인심이 흉흉하여 만백성이 비 오기만을 기다리며 하늘을 원망 하였다.

 

 

하루는 夢中에 동해 용왕이 큰 스님께 배읍하며 말씀하시기를 봉래산 끝자락에 절을 짓고 기도하면 雨順風調하고 國泰民安 할 지니라고 말씀 하셨다.

그 후 스님께서 이곳에 와서 지세를 살펴보니 뒤는 산이요, 앞은 푸른 바다로 아침에 불공을 드리면 저녁때 복을 받는(背山臨水 朝誠募福地) 곳이다 하시고 처음으로 절을 짓고 산 이름을 봉래산, 절 이름을 普門寺라 이름 지었다 한다.

 

그러나 1592년 전 국토를 휩쓴 임진왜란의 戰火로 사찰이 소실되었다가 1930년대초 근 3백여년 만에 통도사 운강(雲崗)화상이 보문사를 중창했으며 여러 스님을 지나 1974년 정암(晸菴)스님이 부임하여 관음도량으로 복원 할 것을 발원하고 백일기도를 한 즉 同向日 꿈에 백의관음(白依觀音)이 오색광명을 놓으며 용을 타고 승천 하는 것을 친견 하시고 寺名을 海東龍宮寺라 바꾸고 기도를 한 즉 기도 영험이 하도 있어 진심으로 기도 하면 누구나 한 가지 소원을 꼭 이루는 신령스러운 곳으로서 오늘도 전국에서 수많은 기도 참배객이 줄을 있고 있다.

 

                                    해동 용궁사 입구 12지상

  해동용궁사 입구에는 좌측으로 12지상이 세워져 있고 신앙심이 깊은 불자들은 십이지상의 석상에 동전을 끼워 넣는 복을 비는 불자가 있는가 하면.......

                 교통안전 탑

 

 

                      모자상

  십이지상을 지나 관세음보살상이 있고 관음 보살상을 참배 하고 해동용궁사 일주문 앞에는 9층의 교통안전 석탑이 있고 우측으로 모자상이 보고서 일주문으로 들어가면 우측으로

득남 불을 만지면 득남 한다고 배를 많이 만지어서 손때가 검게 묻어 있고 가파른 계단에 내려가다 보면 동자 상들이 있으며, 불자들이 시주한 석등이 좌, 우로 늘어서 있고 계단에서 내려다보는 해동 용궁사의 풍경이 호사롭지 않고 바닷가 절벽위에 도량과 돌탑이 어울려진 광경이 한 폭의 그림 같이 아름다워 보였다.

 

득남

                   관세음 보살 상

 

               海東第一觀音聖地 입구

                    득남불

 

 

            내려가는 계단 좌측의 동자 상

 

 

          계단 좌 우에 석등

.  누가 이런 곳에 이렇게 멋 드려지게 잘 그린 그림 한 점을 같다 놓았는가?

  나는 보고 화선지가 뚫어 져라 또 보았노라.

 

                                          해동 용궁사 전경

 

           행운의 동전 점치는 곳

  오늘 따라 연휴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참배객 들이 입구에서는 별로 없었는데 일주문을 들어서니 좁은 계단길이 오가는 참배객들로 이루어져서 혼잡하여 내려가기가 매우 복잡 하였다. 모든 부산 불자들이 전부 참배 하고자 오신 것 같이 크지도 않고 넓지도 않은 도량 안에는 참배객으로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도량 입구 오른쪽으로는 행운의 동전 점을 치는 곳에서는 불자들이 열심히 마음을 가다듬고 동전을 던지고 있는데 쉽게 들어가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이곳을 지나 대웅전 앞에 서니 많은 불자들이 대웅전을 참배 하고 있으며, 그 혼잡스러운 와중에도 딸과 사위는 대웅전 불전에 시주 하고 부처님께 참배하며 소원을 신중하게 하는 것이 아름답게 보였는데, 부처님도 정성에 발원 하시기를 옆에서 간절히 바라는 마음....... 

 

                             대웅전 전경과 사위가 대웅전 부처님에게 참배

                 관세음보살 상

 

              대웅전 좌측의 달마상

  대웅전 좌측 옆으로는 달마상을 참배 하고 나서 좌측으로 圓通門를 통하여 올라가서 관세음보살상을 친견 하고 참배 하니 마음이 편안 하고 행운이 깃드는 편온 한 맑은 정신이 되는 것 같았다.  나무관세음 보살 ~ ~ ~

 

해수관음대불(海水觀音大佛) 이란?

          해수관음대불 안내문

해수(海水)는 바닷물 가라는 뜻이요 관음(觀音)이란 관세음보살님의 약칭이니 불경(佛經)에 이르기를 관세음보살님은 바닷가 외로운 곳에 상주(常住)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예부터 이곳에는 겨울에도 칡꽃이 피였으며(雪中花開) 불상을 모시려고 기초를 파니 땅속에 거북바위(龜岩)가 있어 그 위에 좌대를 앉히고 불상을 묘셨다고 한다.

         지하 약수 처에서 딸이 불을 밝히고 축원 기도

불상을 봉안 한지 3일 되던날 巳時(11시)에 오색 무지개가 불상에 방광(放光)을 하여 먼 바다에까지 이르니 기도 대중이 눈을 의심하고 말을 잊지 못하리라 누구나 지극 정성 하면 한가지 소원을 꼭 이루는 염험한 부처님으로 유명합니다.

 

신도님께서는 지극 정성하시어 모든 공덕을 성취하시기 바랍니다.

불기 2542년  월  일

 

  도로 원통문을 통하여 내려 와서 또 한 지하 약수 처에서 딸 과 사위는 초에 정성스럽게 불을 밝히고 기도를 축원하는 모습 누가 보아도 믿음이라는 것이 있어서 마음의 불을 밝히는 것처럼 아름다움이 또 한 이보다 나을까.......

 

淨口業眞言 : 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이 하는 진언

수리 수리 마하수리 :  깨끗하고 깨끗하고 크게 깨끗하며 아주 깨끗함을 원만

수수리 사하바(3번)    성취케 하소서 (3번)

                황금옷을 입힌 관세음보살 상

  우리는 해동 용궁사 참배를 마치고 바닷가 황금 옷을 입힌 관세음보살상을 참배 하고 이곳에서 해동 용궁사를 배경 삼아 그림 한 장을 머리로 그리고 가슴에 않고 마음으로 이해하고 해파랑 길로 걸어가면,

                                         용궁사를 배경으로 사위와 딸

 

         1997년 5월 26일 개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수산해양 종합과학관 뒤로 해파랑 길이 되 

 

 

                                  수산과학관 안내판

어서 후문을 통하여 이곳을 잠시 전시된 수산생물, 바다목장, 수족관, 등 15개 주제별 전시실에 참고래 실물골격, 국내 최대크기의 산갈치 박제 등 7,300여점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시간의 여유를 갖고 보는 것도 쏠쏠한 산지식인 것 같았다. 모든 견학은 무료 이다. 

             현재의 위치도

 

 

                해양 전시관

 

  이곳의 견학을 마치고 종합과학관 뒤로 해파랑 길을 따라 계속 가면 해안가 도로로 나가서 다시 우측 동암마을(동암항)으로 들어와서 해변 길을 따라 계속 가면 바닷가의 우뚝 솥은 바위에 무속 인이 도량을 지어놓고 기도처로 활용 하는 곳을 지나서 가면 오랑대가 나오고, 오랑대에서 좌측으로 대변항을 바라보면서 가다보면 지방도로 올라가서 지나가는 자동차를 주의 하면서 걷다가 도로변 찻집에서 무거운 다리를 쉬게 할 겸 한 잔의 커피로 목을 적시고 넓은 유리창을 통하여 대변항의 앞바다를 처다 보면서 감개가 무량 하였다.

                        기도처에서 바라본 대변항

 

가  족이 있어 나를 이곳 까지 오개 하고 걸음으로써 비록 몸은 고단 하나 가족의 우애를 돈독히 하고 이 보다 더 좋은 행운이 어디에 또 있는가?

                  대변항 등대

 

 

                    대변항 등대

 

  다시 우측으로 대변항으로 향하여 오늘의 일정의 마지막 코스인 대변항을 거쳐서 오늘의 5시간 40여분의 해파랑 길 일정을 마무리 짓고,

 

내일을 위하여 기장역으로 가서 4량의 새마을 호 타고 오는 도중에 딸의 옛 대학 동창에 전화 걸어 만나자는 약속 하고,

                   기장역 전경

 

 

               부산 부전역 전경

부산 부전역에서 내리니 딸의 동창이 나와서 기다려서 만나가지고 같이 부산 서면 복집에서 복 지리로 겸해서 소주 한잔을 겹드려 저녁 식사 하면서 2일 간의 걸으면 서의 행복을 만끽하며,

 

 

이야기를 즐겁게 하고 딸은 별도로 따로 장소를 옮겨 가지고 친구와의 대화 나누고,

                        딸과 합석

 

나와 사위하고는 해운대 한신 포차 야외에서 부산의 소주(C1) 하고 꼬치로 안주 삼아 딸이 올 때 까지 기다리며 사위와 격의 없이 그간의 즐거웠든 해파랑 길 걷기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가 즐거웠고 행복에 겨웠다.

 

사위 하고 즐겁게 이야기 하는데 딸이 와서 합석 하여 서로의 즐거움을 토로 하고 행복에 겨워 가족이란 개념이 사라지고 친구가 돼서 오늘 저녁의 작은 소찬이지만 딸과 사위로 인한 나만의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았다.

                            부산서 유명한 제과점 옵스(OPS)

 

우리들은 이곳에서 행복을 뒤로 하고 부산에서 유명한 제과점 옵스에 가서 맛있는 과자를 사가지고 쉼터로 가서 먹으며 행복한 하루를 마무리 하였다. 

 

 

 

 

 

 

 

 

 

 

 

 

 

 

 

 

 

제 3 일차 (2013년 9월 22일)

 

                             기장 군청 전경

 부전역에서 09시 05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에 탑승해 기장역에 09시 40분 도착하여 철로 변을 따라 가다가 좌측으로 가면 하천을 이용한 지하도를 빠져서 계속 하천변을 걸으면 14번 국도를 만나면 좌측으로 기장 군청을 지나 기장 체육관을 거쳐서 기장경찰서를 지나서 30여분쯤 가면 국도와 지방도의 갈림길인 삼거리에서 서생, 일광 방향으로 31번 지방도의 아리랑 민속 박물관 도로건너 앞의 하천변에 잘 정비된 해파랑 길을 따라 걸으면 일광 해수욕장 입구에 난계 오영수 갯마을 문학비가 세워져 있는데 비문에........

               잘 정비된 해파랑 길

 

 

              난계 오영수 갯마을 문학비

 

“아낙네 들은 해순이를 앞세우고 후리막으로 달려갔다. 맨발에 식은 모래가 해순이는 오장육부에 간지럽도록 시원했다. 달음산 마루에 초아흐레 달이 걸렸다. 달그림자를 따라 멸치 떼가 들었다.  오여수 소설 갯마을에서”

                      한산한 일광 해수욕장

 

    부산유리공업주식회사 담과 주택의 지붕 사이의 해파랑 길

  이 비문을 읽고 일광 해수욕장에 들어서니 해수욕 철이 지나 사람들은 거의 없고 모래사장의 모래만 은빛을 반사하며 눈시울을 적시는데 지나가는 과객이라 멈추어서 놀아 줄 수는 없고 시원한 바닷바람의 비릿한 냄새를 마트며 멀리서 잔잔한 파도를 벗 삼아 즐겁게 걸음마를 하면서 일광 마을 동쪽 산 능선에 부산유리공업주식사 담과 주택의 지붕 사이로 소로의 해파랑 길을 따라서 걸으면 산(담)모퉁이를 돌아서 나오면,

            해녀 들의 물질

해변 가 자갈밭 길을 가다보면 얼마 되지 않은 거리의 바다 한 가운데 바위섬 근처에서 해녀들이 물질이 계속 되는 것을 보면서 자갈밭 해변을 걸으면 “자그락 자잘 자그락” 하는 소리에 발걸음을 맞추면서 또는 해변의 바위를 조심조심 하면서 걸어가노라면 부산유리공업주식회사의 담 옆으로 된 제방 둑으로 올라가 이천리 마을 뒤 노견이 없는 지방도를 조심 하면서 걸으면,

 

   해파랑 길 리봉

  기장 미역 다시마의 특구인 기장군의 이동마을을 거쳐 지방도 노견이 없는 갓길을 조심 하면서 디비치가든이 해변 가에 잘 정비된 작은(약 2평정도) 집을 지어서 영업 중인 곳을 경유 하여 도로변의 노점에서 잠시 시원한 음료로 목을 적시고 동백항 쪽으로 해변으로 난 해파랑 길을 걸어가는데 군데군데 해파랑 길의 표시가 해변 길 나뭇가지에 매달아서 길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찾을 수 있게 끔 하여 길 찾는 데는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기장 미역 다시마 특구 홍보판

 

   다비치 가든 뒤편에 잘 정비된 작은 집이 있다.

           해동성취사 기도도량 전경

 

 

          도로 노견 없는 위험한 해파랑 길

  이 길을 지나 바닷가 자갈길로 들어서면 늦여름의 휴가객 들이 작은 텐트를 치고 바닷가 돌 틈에서 무었을 잡는지 연신 돌들을 뒤집어서 손을 적시고 한다.

                                해파랑 길 전망대

우리는 찰랑이는 파도소리를 귀에 담고 눈으로는 바닷가의 노니는 즐거움을 바라보면서 걷는 것이 신선이 노는 것이 이보다는 더 즐거울 수 없으리라, 삼일 간 계속 걷는데 몸은 약간 지쳐 있어도 마음만은 젊은 을 가지고 루루라라 루루라라 파이팅 하면서 해파랑 길을 걸어 가며는 해동성취사인 기도도량 앞의 지방도로 올라와서 2차선의 노견이 없는 갓길을 따라 가다보면 온정 마을의 마을회관과 석황사 사이로 난 지빙도에서 갈라지는 도로로 나아가면 한산 한 동백항을 지나 해변으로 난 잘 정비된 해파랑 길의 전망대에서 쉬었다 가 넓은 바다를 마음 것 가슴에 담아보고 나서 조금 가면 일광면 신평리 앞 바다에 척사대라고 하는 속칭 윳판대라는 큰 바위가 있다.

              윳판대 안내판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 장수와 왜장이 서로 싸움을 하여 하루에 몇합이나 칼과 창으로 겨루었지만 몇일이 되어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두 장수는 무력으로 겨루는 것을 단념 하고 지구력으로 겨루기로 하고 이곳 바위에서 윳놀이를 하여 그 승부를 결정하기로 하였다.

 

그때 왜장이 저녁 햇빛이 밝게 비치는 바다 쪽을 등지고 있었고, 이쪽 장수는 그 반대로 바다를 향하여 있다가 바위에 윳 판이 잘 보이게 깊고 굵게 금을 새기고 있는 것을 발길로 걷어차 넘어지는 것을 바다에 던져 버렸던 곳 이라고 한다. 지금도 바위에는 그때의 윳 판대가 있다고 한다.”

                              윳판대 바위

 

  현재 안내판 바로 아래에 윳판 대가 있는데 윳판 대 위에는 흙과 주변의 풀이 함께 덮여 있어서 열심히 흙을 닦고 풀을 치우고 나서야 간신히 윳판 대의 모습을 렌즈에 담을 수 있었다. 조상들의 유적지로서 아쉬웠던 것은 관리 면에서 좀 더 신중히 기하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바닷가 해파랑 길을 걸으며 은은 하게 들려오는 파도 소리를 귀에 담고 눈으로는 검푸른 넓은 바다를 마음 것 보고, 즐겁게 걸어가며 심호흡을 하니 바닷가의 비릿한 내음 새가 콧속으로 들어와 바닷가에 있음을 실감하게 느끼며 넓은 바다에 향하여 내일의 꿈을 던져도 보고, 가족의 행운과 건강이 함께 깃들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며, 오늘의 나를 이곳에 있게 하여준 딸과 사위가 남이였으면 이렇게 하여 주었을까 하며 생각을 하여 보았다. 고맙다.

 

  딸과 사위 즉 가족의 한 일원으로서 다 같이 동참함으로 우애가 있고 이 즐거움이 보람되며 앞으로 한 발씩 나아가는 힘의 원천이 될 것이다.

 

 

                   일광(日光) 해창(海倉) 안내판

 

  여기 칠암항 까지 3시간 걸어오면서 체력이 소진되어 우리는 파이팅을 왜치면서 마지막 남은 구간을 향하여 가는데 칠암항 해변에 일광(日光) 해창(海倉)의 안내판이 세워진 곳은 해창의 선착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기록 되어 있다.

 

  안내판의 기록을 살펴보면

  어느 곳이든지 산수(山水)와 풍(風)이 좋아 안택(安宅)할 수 있는 곳이면 사람이 모여서 자연마을을 형성하고 그곳에서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마을의 모습도 바뀌어 지고 사람들의 사는 모습도 변화하여 환경에 적응하며, 그리고 순응하여 살아온 것이 우리네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중기 임진왜란은 그 당시 조선 광역의 어느 곳 못지않게 기장지역 삶의 질서를 무참히 파괴시켰으며, 혼돈 속으로 빠져 들게 하였다. 전쟁이 끝난 선조 32년(1599년)에는 기장을 남과 북으로 나누어서 남쪽은 동래로 북쪽은 울산부로 속하게 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일광면 문동리(文東里)도 한때는 울산에 속하게 되었다.

 

이곳 사람은 해창(海倉)이 있었던 이 지역을 “창(倉)” 마을이라 하고 있는데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옛날 해창을 세우려고 기장 현감이 택일을 해놓고 이를 알리기 위하여 방목(榜目)을 붙였더니 그날 밤 그 방목이 바람에 날려 문상마을 인 이곳에 떨어져 있으므로 고을 원님이 그 사실을 전해 듣고 와서 보고는 그 자리가 좋다하여 이곳에 해창을 세웠다”고 한다.

 

기장의 역사 기록한 (기장현읍지(현종 5년:1839년) 창고(倉庫)조를 보면 사창(司倉 : 在客舘東)과 해창(海倉 : 在縣東二十里)그리고 대동고(大同庫 : 在縣南七里角師)가 기록되어 있는데, “사창(司倉)은 성내(城內)의 객관동쪽에 있으며, 해창(海倉)은 현 동쪽 20리로 지금의 일광면 문동리 문상마을에 있었고, 그리고 대동고(大同庫)는 현의 남쪽 7리 주사(舟師 : 水軍)가 있는 대변에 있었다.”라고 되어 있다.

 

조선조 후기에 작자미상으로 기장의 아름다운 산천경계를 노래한 車 城歌 종북면의 첫 구절에는 “망해정(望海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던 인근에 자리하고 있었다.”라고 밝히고 있고, 또 1872년경에 그려진 기장현 지도에는 사창(社倉 : 上北面, 下北面, 上西面, 南西面, 邑內面, 東面, 中北面)이 모두  7곳이며 이 가운데 중북면(中北面)은 해창(海倉)을 겸한 사창(社倉)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특이한 것은 다른 6곳의 사창은 초기이나 중북면의 해창은 기와집(瓦家)으로 그려져 있는 것을 보면 창고(倉庫)로써 다른 어느 곳보다 더 중요한 목적으로 만들어 졌을 것이다.

 

사창을 겸한 해창은 조선시대에 각 고을의 환곡(還穀)과 바닷가의 해산물을 저장하여 두던 곳으로 언제 이곳에 해창이 설치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해창에 관련된 사료나 지지류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신 중동국여지승람』과 임진왜란이 끝난 후 1600년대의 사료 및 지지류 등의 자료가 알수 없다. 그러나  해동지도(海東地圖 : 1756년)에는 해창이 그려져 있고 기장현읍지도(機張縣邑地圖 : 1872년)에는 사창 겸 해창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일제강정기에 발행된 조선환여승람(朝鮮寰與勝覽)에는 해창의 기록은 없고 산천조(山川條)에 해창포(海倉浦)로 나와 있음을 알 수 있다. 약 20여년전 해창이 있었던 문상마을의 농기구 창고를 정리 할 때 땅속에서 몇 개의 유물이 발견 되었는데,

 

이 유물의 일부는 “기징교리 돌망무덤”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의 “항아리”와 장안읍 명래에서 수습된 “뼈 항아리”와 비슥한 모양의 토기가 나온 것을 보면 해창이 있었던 이곳은 이미 고려시대이전부터 해안을 접하고 동해의 일출을 한 눈으로 바라 볼 수 있는 사람이 정 붙이고 살기에 적합하고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안내판이 세워진 이곳은 해창의 선착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리 원자력 발전소 전경

                    하늘타리 카페 실내 전경

  위와 같은 기록을 살펴보고 당시의 해창 자리임을 인지하고 칠암항에서 건너편에 웅장한 원통형의 고리 원자력 발전소를 바라보면서 부산시와 거창군의 전기를 담당하는 국가의 중요 사업장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대한민국은 대단한 나라이라고 생각이 든다.

 

 

3시간 10여분 동안 해파랑 길을 걸어서 문중마을 에 도착 하니 배님께서 시장 하다고 하시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명절 연휴의 끝 날이라 상가 및 음식점도도 문을 열지 않아서 이곳에서 10여 분간 걸으니 바닷가에 “하늘타리” 카페에 들어가서 아늑한 창가에 앉아 점심을 돈가스와 칼국수를 주문하고 앉아 있으니 창을 통하여 바라보는 넓은 바다로 인하여 그 간에 걸어온 감회가 떠오르는데 행복한 해파랑 길이였다.

 

  걸으면서 귀로 파도소리 들으며, 눈으로 넓은 바다를 보고, 가슴으로 시원함을 느끼니 이 보다 더 좋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또 해파랑 길을 계속 해서 걷고 싶다.

 

                                       임량 해수욕장 전경

  우리는 점심을 맛있게 먹고 31번 국도로 올라와서 오늘의 마지막 도착지를 향하여 30여분 걸으니 갈매기 길 시작점에서 우측으로 1차선의 좁은 도로를 따라 가면 임량 해수욕장에 도착 한다. 임량 해수욕장은 기장 팔경(죽도, 일광해수욕장, 장안사 계곡, 홍연폭포, 소학대, 시랑대, 임량해수욕장) 중에 속하며 해파랑 길과 갈매기 길이 겹치는 곳으로 해변의 모래사장은 쓸쓸히 아무도 없고 파도 소리만 철섯 철석 ~ ~ ~

 

 

해변 가 상가는 모두 문을 열지 않아서 지나가는 식객이 배를 잔 득 움츠리고 그냥 지나가야 할 정도로 한산 하였다. 

 

  임랑해수욕장에 대하여

                      임량 해수욕장 안내문

  장안읍 임랑리에 위치하고 있는 기장의 양대 해수욕장의 하나이다. 예로부터 월내해수욕장과 함께 임을랑포라 한다. 이곳 주민들은 아름다운 송림(松林)과 달빛에 반짝이는 은빛 파랑(波浪)의 두자를 따서 임량이라 하였다고 한다.

 

 

 

차성가에서도 도화수(桃花水) 뛰는 궐어(鱖漁 : 쏘가리) 임랑천에 천렵(川獵)하고, 동산(東山)위에 달이 떴으니 월호(月湖)에 선유(船遊) 한다. 라고 하여 이곳의 자연경관을 예찬 하였다. 그리하여 이곳의 경관을 월호추월(月湖秋月)의 승경(勝景)이라 하여 차성팔경의 하나로 여긴다.

 

                       월내역 전경

 

 

  위와 같이 기장의 팔경 중 하나인 임랑해수욕장을 거쳐 해파랑 길의 마지막 기점인 단선 철로가 동해남부선 월내역을 마지막으로 3코스가 20.2㎞를 걸었고 다시 4코스 시작점인 월내역에서 단선 철로변 울타리를 따라 10분 정도 가면 우측으로 5분여 가서 31번 일반국도를 만나면 좌측으로 1번 일반국도 따라 15분여 정도 걸으면 삼거리에서 고리 원자력 발전소 방향으로 10m에 한국수력원자력(주) 고리원자력 본부 내의 고리원자력 홍보관에 가서 관람 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와 상식을 쥐어 주는 것 같았다.

 

                                  고리 원자력 발전소 홍보관 전경

 

              원자력 발전소 계통도

 

 

               원자력 발전소 계통도

  이곳의 관람을 마치고 월내역으로 다시 돌아와 오늘의 해파랑 길 걷기를 마치기로 하는 데 훌 가분 하면서도 무언가는 못내 아쉬움이 도사리고 있다.

 

  770 ㎞의 해파랑길 대 장정이 시작되는 동해와 남해의 분기점인 부산 오륙도 공원에서 첫 걸음을 내 딛자마자 남해의 풍광에 압도되어 감탄사가 절로 나오며 광안리 해변과 해운대 해변은 이국적 풍경을 자아내고 있어서 한국 내 외국이 바로 부산의 광안리와 해운대가 있고 또 한 해운대는 신라 최치원이 속세를 버리고 가야산으로 들던 길에 빼어난 경치에 반해 자신의 자(字)인 해운(海雲)을 바위에 새겨 넣은 후 해운대라 불리게 되었다.

 

  달빛을 머금으며 걷는 달맞이고개의 문텐로드를 거쳐 구덕포를 지나 송정 해변을 걸으면 멸치 집산지인 대변항에 이른다. 여기서 기장 죽성리 왜성으로 넘어가던 고개길은 오르지 두 다리에 의존해야 소통 할 수 있었던 고단했던 옛 사람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기장군청을 지나 임광 해변을 거쳐서 임량 해변에서 단선 철로가 애틋한 동해남부선 월내역 까지 총 거리 54.4㎞를 걷게 하여 준 것에 대하여 고맙고 이렇게 걸음으로써 가족의 우의가 돈독해 졌으며 느끼며, 그간 삶의 매듭 엮어가는 하루하루가 힘겨움에 숨 가쁘게 달려 왔지만, 앞으로 나의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어 놓는 것 같았다.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 계속 하여서 해파랑 길을 걷고자 한다.

 

 

                                                                 2013년 9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