奇人 李土亭 先生 조선 중종 때. 주역팔괘(周易八卦)에 능통한
이지함은 그 유명한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문하에서 학문을 했고, 한때는 아산(牙山)
어려서부터 남다르게 총명하고 남 돕기를 좋아했던, 그는 성장하여 결혼을 해서도
부인과 자녀들은 남다른 고생을 함에도
나이가 더 할수록 학문과 인격이 높아감에 따라 비록 없이 살긴 해도 그를 따르고
의학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기였으므로
이지함은 주역팔괘에 능통하였던 터라 그 괘를 응용해서 닥쳐올 액을 그러다 보니 소문에 소문을 듣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작은 골목길에 위치한 집을 놓아둔
그런 연유로 세상사람들은 이지함을
토정선생은 그런 폐단을 줄이고자,
그런데, 그「토정비결」이란 책이 너무도 신기하게 미래를 잘 맞추자 우매한
토정선생은 몹시 가난해 밥솥이나 갓(冠), 신발 등을 제대로 구할 수가 없어 쇠붙이(鐵)로 두들겨 만든 쇠 갓(鐵冠)을 쓰고 다녔고,
특히. 토정선생은 세상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항해 기술로 제주도를 왕래하여 사람들을 그도 그럴 것이 광풍(狂風)이 몰아치는 악천후에 닻을 단 큰 배 들도 항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 판국에 토정선생은 유유하게 조각배를
어떤 의미에서 그랬는지는 아직도 신비 속에 쌓여있으나, 일엽편주로 항해를 할 때면 꼭 닭 네 마리를 배의 귀퉁이에 매달아 균형을 유지하여 침몰의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길을 가다가도 지팡이에 턱을 괸 채 서서 잠을 자기도 했다.
그가 남긴 저서로는 개인의 운명을 매년마다 볼 수 있는「토정비결」과 주로
원숭이·쥐·용(申子辰)해는 병란이 있고, 범·뱀·돼지(寅巳亥)해는 혼란과 옥사 등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대로 임진 왜란·병자호란·을사사화·을사오적신 (乙士五賊臣)들의 매국노(賣國奴)사건과 1926년 항일학생 시위운동사건 등은 그가 예언한 일면을 그대로 실증해 주었다.
토정선생은 호걸(豪傑) 기인(奇人)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어려운 기문기답(奇問奇答)으로도 유명했다.
어느 사람이 선생에게, "세상에서 가장 부자는 누구요?"하고 질문하자, "부막부어불탐 (富莫富於不貪)이라 하여 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부자를 욕심내지 않는 것이라."고 했고,
또한,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 누구요?"고 질문하자,
이처럼. 토정선생은 보통사람으로서는 몇날 며칠을 두고도 생각지 못할 명답을 즉석에서 하는 것만 보아도 얼마나 달인(達人) 이었던가를 알 수 있다.
한번은 조상의 제사를 모셔야 하는데, 제수 살 돈이 없어 쩔쩔매자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를 머슴에게 주면서 어느 곳, 어느 시각에 그곳을 가면 얼마에 산다는 사람이 있을 테니 팔아 오라고 했다.
하인은 시키는 대로 가르쳐 준 장소에 가 보았더니 토정선생이 예언한 대로
하인을 본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내년 이맘때면 반드시 오늘의 그 시간에 그 가보를 다시 팔려고 그 장소에 나올 테니 그때 다시 사 오라."고 했다. 하인은 이해할수 없다는 듯이, "정말입니까? 아니, 정말로 그 사람이 다시 팔러 나온다고요. 그런 경우가 어디 있어요?" 그러나 선생은 웃음을 띄우며, "기다려 보라."는 것이었다.
일년이 지나고 다시 작년처럼 제삿날이 다가왔다. 하인은 혹시나 하면서도 그 장소로 가 보았다. 그랬더니 선생이
토정선생의 많은 예언에 비하면 그러한 예언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토정선생은 이율곡(李栗谷) 선생과 달라 다툰 적도 많았다.
그렇지만, 한때 당파싸움으로 나라가 시끄럽게되자. 율곡선생이 귀향을 하기로 작정했다는 소식을 들은 토정선생은 율곡선생을 만나,"율곡마저 귀향을 하게 되면당파싸움은
선생이 일생을 마치자.나라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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